▲500년 된 만취당 서편 향나무
최서우
사촌마을은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 김자첨이 1392년 이곳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마을이 중국의 사진촌(沙眞村)과 비슷하다고 사촌이라고 지어졌다. 사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출생지이기도 한데, 류성룡의 어머니 안동 김씨의 친정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부장제와 달리 임진왜란 이전 양반 가문도 처가에 가서 아이를 출생하는 일이 흔했다. 참고로 류성룡의 어머니는 향나무를 심은 송은의 딸인데, 서애가 왕의 명을 받아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인가, 만취당 오른편 길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안동 김씨 가문들이 오른편에는 풍산 류씨 가문들이 살고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서애 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7세손 태춘이 하회에서 사촌으로 입향해서 그렇다. 7대조 작은할아버지가 출생한 곳에 입향했을 때 류태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로숲
전통 가옥 외에도 마을 서쪽 편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05호 사촌 가로숲을 보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을에 이주한 김자첨이 이곳에 이주할 때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이다. 여기에 있는 굵은 나무들은 600년 동안 마을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숲을 거닐다 큰 도로 건너에는 '안동김씨사촌입향육백년추원비'가 있다. 좌우 사자상에는 지과필개(知過必改)와 득능막망(得能莫忘)이라고 적혀 있는데, '잘못을 깨달으면 고쳐야 하며, 능력을 얻으면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원래 이곳에는 옛 별신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성함과 기능성 모두를 갖춘 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