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 외딴 섬에 갇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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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야죠!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텐데 가서 밥이라도 해줄 거예요.
"아연님이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독립된 태도 vs 단절된 태도
- 도와주셨을 것 같아요. 솔직히 도와 달라고 하고 싶었죠. 그런데 그건 제 욕심이잖아요. 결혼도 했고 독립도 했는 걸요.
"그래요.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려서 독립했지요. 그런데 독립하면 도움을 받으면 안 되나요?"
- 독립했으면 스스로 해내야죠.
"많은 분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세요. 독립을 혼자 판단하고, 혼자 책임지고, 혼자 해내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독립과 단절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려 하는 건 독립된 태도가 아니라 단절된 태도예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힘들게 만드는 거지요. 건강하게 잘 독립한 사람은 도움을 주고받는 데도 유능하답니다."
- 혼자서 해내려고 하는 게 독립이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태도라고요? 갑자기 혼란스러워요. 그럼 '독립' 된 태도는 뭔가요?
"독립은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선을 인정하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에요. 내가 상대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이고, 상대 역시 나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거지요. 상대방이 '난 이게 좋아'라고 하면 '저 사람은 저게 좋구나. 저 만큼이 좋구나'라고 인정하고, '나는 이게 좋아. 나는 이 만큼이 좋아' 하고 내 경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독립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독립을 하려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치의 능력을 갖추는 건 필요하지요. 엄마, 아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태도는 독립하지 못한 미숙한 모습인 게 맞아요.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같이 의논해 보는 것,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다양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 등은 모두 충분히 독립적인 모습이에요.
- 단순히 혼자 해낼 수 있고 말고가 독립의 기준은 아니군요.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리되, 거절하시면 물러서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진정한 독립이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도움이 필요하실 때 아연님에게 도와 달라고 하실 수 있고, 아연님은 흔쾌히 도와드릴 수도, 양해를 구하고 거절할 수도 있어요. 독립적인 관계에서는 도와 달라고 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요. 상대방의 시간과 에너지가 상대방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거든요."
도움 받을 곳이 없는 요즘 부모들
- 그런데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네요.
"맞아요. 저는 요즘 부모들이 스스로 혼자 해내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줄어들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커졌기 때문에 더 힘들어진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았어요. 옆집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는 심부름도 종종 갔고, 김장철엔 옆집 아주머니들이 오시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동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를 돌봐 주시기도 했고, 대입 시험을 치른 겨울엔 동네 초등학교(국민학교였습니다~) 6학년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어요. 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것도 크지만, '우리 동네'는 서로에게 심리적 안전지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 놀이터에도 같이 가요. 혹여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누가 어느 집 몇 째인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지냈어요. 아이가 혼자 나가 놀아도 동네 사람 누군가의 시야에는 그 아이가 들어 있는 셈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안전이 확보되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잖아요. 그만큼 요즘 부모들은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커졌어요. 상담과 워크숍을 통해 만난 부모들은 육아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게 가장 버겁다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