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병과 악수를 나누는 육영수 여사
눈빛출판사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
내 책을 15권이나 펴낸 준 눈빛출판사는 사진전문출판사다. 그 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사진 마니아로 사진에 관한 한 국보적 인물이다. 그는 이따금 희귀한 근현대 사진을 밤새워 입수한 뒤 나에게 고증 겸 자문을 구하곤 한다. 올 봄 어느 날, 그는 초병과 악수를 나누는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면서 혹 선생님이 파주 심학산 부대에서 근무할 때가 아닌가 하고 문의해 왔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1970년 4월 하순, 그 무렵 나는 서부전선 최북단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파주 심학산 일대 경계 임무를 띤 보병부대에 근무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육영수 여사가 우리 중대 병사들을 위문코자 방문한다는 전달을 받았다. 그 뒤 군단, 사단, 연대에서는 귀한 손님이 온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때 나는 26사단 73연대 3중대 부중대장 보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하여 영부인을 영접하고자 부대 환경과 병사들의 취사 및 위생 상태를 개선하는 총책으로 꼬박 일주일 고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매일 같이 상급 부대에서 감독이 나왔고, 육 여사 방문 예정일 이틀 전부터는 사단 참모가 아예 우리 중대로 출근해서 닦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 중대원 이발, 손발톱 깎기는 물론 심지어 영부인이 볼 리도 없는 팬티까지 사단 보급창에서 가져다가 새 것으로 갈아 입혔다. 그밖에 사단 식당의 식탁까지 우리 부대로 옮겨 놓기도 했다.
마침내 육영수 여사가 오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별 판을 단 지프차들이 우리 중대로 우르르 몰려왔다. 영부인 도착 예정시간이 되자, 중대 위병소 앞에서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이 죽 도열 대기했다.
그런데, 육영수 여사가 탄 검은 승용차는 한강 둑길(현, 자유로)로 뿌연 먼저를 일으키며 오더니 곧장 부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부대 어귀 초소에 멈췄다.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영부인은 승용차에서 내린 뒤 초병과 악수를 나누고 그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기념선물로 사탕봉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