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높이 위 굴착기에서 농성 중인 송경동 시인
기륭전자 노조카페
*이 기사는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거리와 광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입법의 공간입니다. 영광이죠."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에게 붙은 이 수식어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더니 되돌아온 대답이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은 그의 시집이 출간됐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그를 만났다. 시집 4편을 펴낸 50대 중반의 송 시인이 여전히 거리에 남은 까닭이 궁금했다. 소외된 노동현장, 정규직도 아닌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현장을 지킨 그 힘의 근원과 강도를 알고 싶었다.
[첫 시] 봄비... 나의 손을 잡아줬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단다. 국어선생님이 내준 숙제로 <봄비>라는 시를 썼는데, 벼락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용은 한 구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악동이고 문제아였던 제가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그 뒤에도 시를 쓰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칭찬이 그리워서 가끔씩은 시를 끄적였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내가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청소년기에 저의 삶은 바닥이었어요.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떠돌았죠.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시는 저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는 친구였어요."
시작은 지독한 고독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사회와 역사를 알게 됐고, 소외된 사람들의 서글픔과 아픔, 이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서 "결국 사랑에 대한 갈구, 우리 모두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열망과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나의 손을 잡아준 게 시였다"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너 이 자식, 예전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왜 다르게 살려고 해'라고 질책하는 최대 감시자"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낸 시집에서 현재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시로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을 꼽았다.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모두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
-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중에서
그간 열정적으로 거리에 섰던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기자로서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이렇듯 그는 스스로를 견책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