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기완 선생의 영결식이 서울광장에서 엄수된 19일 송경동 시인이 조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랑 때문에..."
'거리의 시인', '투사 시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쉽게 튀어나올 줄 몰랐다.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몰려가 공장 담벼락을 넘자고 주동했다가 0.95평 독방에 갇혔던 그였다. 넉달 반 동안 광화문광장 텐트에서 엄동설한을 버티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대형 포클레인 위에 올라 점거농성하다가 떨어져 발뒤꿈치뼈가 열 네 조각이 났다.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투쟁을 할 때 경찰이 던진 벽돌에 머리가 터졌다.
"나의 시는 나의 무기"라고 목 놓아 외칠 것 같은 그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묻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메아리가 사랑 때문이라니...
지난 12일 영등포역 근처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서울 영등포구 도신로 51길 7-13)에서 송경동 시인(55)을 만났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어 그가 최근 펴낸 4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를 들고서다. 6년 만에 시집을 내놓은 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촛불항쟁 성과를 5년 만에 거덜내고 수구·보수·재벌 정부를 맞게 되는 시점에 시집이 나와 기쁨보다는 씁쓸함과 함께 분노가 인다"고 말했다. 그 심정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
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빌어먹을, 다시 죽 쒀서 개 줬군요
다른 꿈을 꾼다는 건 여전히
뼛속 바닥까지 쓸쓸하고/외로운 일이군요.
-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 중에서
[시평] "오랜만에 느끼는 서정적 투지"
한 시인이 언론 입길에 오르는 일은 흔치않다. 간혹 등장해도 문화면 정도가 시인의 자리다. 그는 주로 사회면을 장식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박근혜 정부 노동법 개악에 맞선 '을들의 국민투표'도 그가 앞장섰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광화문광장에 차린 유쾌, 통쾌하고 발랄한 '예술인 텐트촌'은 박근혜 탄핵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곳 촌장도 그였다.
점거, 단식, 천막농성... 보수언론들은 이런 그를 '전문 시위꾼'으로 몰기도 했지만 적어도 명성을 쫓아 문단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가로 알려진 그의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어떨까? 불문학자인 안삼환 선생과 김윤태 문학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이런 평가를 올렸다.
"하이네의 경향성이 엿보인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괴테와 함께 독일의 국민 시인이다. 우리에게는 서정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냉혹한 현실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정치 참여시의 선구자였으며 혁명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송 시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시와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하이네의 시와 비교된 것 자체로도 영광이고 고마웠다"면서 겸연쩍어했다.
그런데 류근 시인도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성찬을 올렸다.
"창비 시선의 마지막 전사 같은 육성이 우렁우렁 살아난다. 모처럼 마주하는 생목소리다. 나는 쉰 듯도 하고 고음인 듯도 하고 아주 저음인 듯도 한 송경동의 음성을 들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창비스러운' 서정적 투지를 느낀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오늘 밤 꿈에 송경동의 살냄새 피냄새 땀냄새가 범람할 것 같다."
서평가인 김미옥씨도 페이스북에 "양립 불가한 투쟁과 서정이 이렇게 어깨를 겯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라고 적었고,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송경동은 리얼리스트로 위장 취업한 도도한 낭만주의자다"라고 평했다.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송 시인의 투지 앞에 '서정'이라는 수식을 단 게 무엇보다 생소했다. 학창시절, 우리는 서정시와 참여시는 양극단의 시로 배웠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나치 치하의 독일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절망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시적 서정은 아름다운 꽃 한송이, 눈부신 자연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그는 공장 노동자 등짝에 핀 소금꽃에서도 빛나는 서정을 길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