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54 돈대
이승숙
강화도는 조선의 심장부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강화를 지키는 게 곧 한양을 지키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나라를 보위하는 길이었다. 강화의 해안을 따라 48개의 돈대를 만든 것은 강화도를 요새화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약 2km마다 한 개씩의 돈대가 바닷가 높은 곳에 들어섰으니 강화도는 하나의 큰 성(城)과 다름없었다.
이후로도 강화에 돈대를 더 축조했다. 선수돈대도 나중에 만든 돈대 중 하나다. 숙종 16년(1690) 강화유수 신후재(申厚載)가 강화도의 돈대가 모두 48개라고 왕에게 보고한 사실과 숙종 22년(1696)에 발간된 <강도지(江都誌)>에 검암돈대(선수돈대)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선수돈대는 1690년에서 1696년(숙종 16~22) 사이에 만들어진 듯하다.
강화도, 5진 7보 54돈대
선수돈대는 장곶보 관할 아래 있었다. 강화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 그리고 54개의 돈대가 있었는데 요즘으로 치자면 대대급 규모의 부대가 5개, 중대급이 7개, 그리고 54개의 소대급 규모의 부대가 강화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만큼 강화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다는 뜻이리라.
'장곶보(長串堡)'는 강화의 서남쪽 지역에 있었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위치했던 장곶보에는 종9품의 별장과 군관 15명에 배치된 군졸만 86명에 달했다. 장곶보는 미곶돈대, 북일곶돈대, 장곶돈대, 검암돈대(선수돈대) 등 모두 4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