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대첩비각 안에 구비가 있고 왼쪽이 재건비
오창환
장군께서 돌아가신 1년 후인 1602년 장군의 부하들이 산 정상 부분에 행주대첩비를 세운다. 이를 새로 만들어진 비와 구별하기 위해서 구비(舊碑)라고 하는데 비문은 최립이 짓고 글씨는 당대 최고 명필 한석봉이 썼으며 끝의 추기는 사위인 이항복이 지었다. 지금의 정상부 기념비는 1963년에 세운 것으로 재건비라고 칭한다. 1970년에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를 건립하였고 무너진 재건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충의정, 덕양정, 진강정 등과 정문인 대첩문도 함께 세우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다.
행주산성 들어가 각자만의 그림을... 행주치마 퍼포먼스도
행주산성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늘 좋은 기회가 왔다. 다른 스케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첩문에 들어서니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진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산이 아닌가. 올라가다가 중간쯤에 권율 장군님 사당인 충장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방화대교나 행주대교 전경도 좋고 주변 경관도 그릴만 하지만 처음부터 행주대첩비를 그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거의 정상 부근에 전망이 좋은 덕양정이 있고 최정상에는 행주대첩비 재건비가 있고 그 옆에 구비가 있다.
재건비는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아있어서 시선을 끈다. 큰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고 비문은 서희환 선생님의 글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예술적 재능이 출중해서 붓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비문을 쓴 서희환 선생님은 소전(素荃) 손재형에게 사사했으며 독특한 한글 서체를 개발하여 1960~19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한글 서예가였다. 그는 세종대 교수를 역임하고 각종 미술전의 심사위원도 했으며 특히 비문과 비석 현판을 많이 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글서예가 중 한 분이다.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낸 서희환 선생님 이후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가 멋있다.
서희환님은 비문뿐 아니라 대첩문, 덕양정, 대첩비각 등 산성 안에 있는 현판은 모두 쓰셨다. 그런데 구비의 보호각인 대첩비각 안에 조그만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주산성을 보수할 때 참여한 공무원이라든지 참여헙체 사장 이름 등이 적혀있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희환님 글씨는 여러 글자가 어우러져야 멋있는데 현판 글자는 고작 서너 자에 불과하니 그의 멋진 글씨가 돋보이질 않는다. 내 눈에는 힘을 빼고 쓴 비각 안의 글씨가 가장 멋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재미있는 사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손재형에게 서예를 사사했는데 선생님을 직접 청와대로 초청하면서까지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서희환도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었다.
산성 정상 부분을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구비와 재건비를 한 프레임에 넣고 그릴 수 있는 자리에는 그늘이 없다.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우며 땡볕에 앉았다. 행주산성은 굵은 나무도 많고 좋은 그늘도 많지만 여기는 정상 부분이라 햇빛 아래서 그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조금 그리다 보니 그늘에서 그리는 스케쳐들이 부러워진다. 그래도 나는 신구 대첩비가 한 프레임에 들어간 이 구도가 마음에 든다.
2시 반에 충장사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는데, 우리 스케쳐들은 참으로 다양한 시선으로 행주산성을 그렸다. 워낙 의미 있는 곳이고 그릴 곳도 많아서 다시 와서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주산성 스케치에 맞춰서 광목으로 행주치마를 몇 벌 만들어온 분이 있었다. 다들 돌아가며 행주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는 즐거운 퍼포먼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