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리 해수욕장 드로잉 모습. 일정상 시간이 모자라 빨리 스케치 할수 밖에 없었는데 뜻밖에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
오창환
재즈에서 임프로바이즈(improvise)는 미리 악보나 리허설 없이 연주하는 것을 뜻하며 '즉흥 연주를 하다'로 해석된다.
우리는 평소 대화를 할 때 미리 리허설을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게 된다. 물론 이때 이전에 사용하였던 단어나 어구를 상황에 맞춰서 조합한다.
재즈 연주도 평소에 연습하던 음악을 연주 상황에 맞춰서 즉흥 연주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임프로바이즈라고 한다.
대부분의 재즈 애호가들은 임프로바이즈를 재즈의 근본 요소로 생각하며, 재즈 뮤지션들 중에는 임프로바이즈가 바로 재즈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재즈에서 임프로바이즈가 가능한 이유는 큰 선율과 리듬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주자는 그 선율을 타면서 임프로바이즈 하는 것이다. 록밴드 공연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악에 재즈가 있다면 그림에는 어반스케치가 있다. 특히 현장에서 임프로바이즈 하는 면에서 재즈와 어반스케치는 일맥상통한다.
어반스케치는 현장에서 그리는 그림이라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임프로바이즈하면 재즈 연주처럼 생생하고 재미있는 그림이 된다. 이는 다른 미술 장르에서 따라 하기 힘든 어반스케치의 장점이자 미학이다.
현장에서는 그림의 프레이밍부터 날씨와 주변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그림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즉흥적으로 그려야 되는데, 요즘 보면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들도 그런 요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과 주어진 상황이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작가가 임프로바이즈 할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마리나 그레차닉(Marina Grechanik)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반스케치 작가다. 이스라엘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다. 원래 일러스트레이션도 하고 일반 그림도 그리는 작가였는데,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세계적인 유명 작가가 되었고, 전 세계 어반스케쳐가 모이는 심포지엄에서도 단골 초대 손님이다. 그녀의 핀터레스트에 다음과 같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어반스케쳐, 미술교육자이다. 나는 스케치에 열정적이다. 여행할 때, 늘 스케치북을 갖고 다닌다. 그러나 어반스케치의 진짜 핵심은 일상생활에서 이야기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매일 생활 속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스케치북과 펜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보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스케치를 시작하면 된다! 나는 기꺼이 나의 열정을 나누어줄 용의가 있다 - 와서 나와 함께 스케치하세요!
그녀의 자기소개를 길게 인용한 이유는, 그녀의 말이 곧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마리나는 사용하는 화구도 다양한데 볼펜도 즐겨 사용하고, 색연필과 오일파스텔, 수채물감과 불투명 물감 등 가리지를 않는다.
막 그린 듯한 그녀의 그림이 참으로 멋있어서 열광적인 팬이 많다. 그녀는 자신이 그림 그리는 동영상을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현장 상황에 맞게 빠르게 즉석에서 그리며 어떠한 망설임도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