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으로 행복을 선택하는 능력은스스로 키워갈 수 있는 후천적 재능이다. 소질은 신의 제비뽑기다.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멋져 보이긴 하지만, 잘나서 그 능력을 얻은 건 아니다. 유전병이 있다고 그 사람에게 잘못이 많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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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라는 틀을 걷어내고 생각하면, 서로 다른 사람이니 다른 게 당연하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브 잡스... 위대한 업적을 남긴 ADHD인 얘기를 읽으면 약간 기가 살긴 하는데, '그건 그냥 사회적 성공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질은 무작위로 주어진 기능이다. 몇 개의 기능에 능력이 집중된 경우 타인이 보기엔 좋아보여도 본인 삶의 만족도는 낮을 수 있다. 반대로 균형 잡힌 기능들이 생활의 안정감을 이루지만 그게 공기 같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재능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느 하나에 뛰어나지 않다는 게 결핍 같다. 그런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재능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제일 가성비 좋은 재능 같다. 재능은 삶의 도구일 뿐이고, 인생은 각개전투니까.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각자의 굴레가 있다.
기능 수준 파악하기
한계의 벽에 오만 번 박치기를 하다 보니 '하면 된다'에 가린 진실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보다 잘하기 어려운 일은 분명히 있다.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지는 분야가 있다는 뜻이다.
매번 기대치에 비해 결과가 낮으면 열등감이 없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건 그 전까지 자신을 잘 몰랐다는 뜻도 된다. 기본적으로 ADHD를 가진 사람은 비ADHD인에 비해 각 기능이 불균형하다. 시청각 인지능력, 언어 표현력과 이해력, 행동과 감정 조절능력 등. 불균형하니까 헷갈린다. 자기 능력을 그대로 파악하고 적당한 기대치를 갖기가 쉽지 않다.
움츠러들 때면 곧바로 내가 나를 실제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나는 대화 센스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대화에 참여할 용기마저 사라지는 걸 자주 느낀다. 내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 잘 늘지 않는 능력도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전보다 나아진 점에 집중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자료가 쌓이면 선택이 쉬워진다. 장점과 단점, 그 외 다양한 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세히 알수록 좋다. 작년, 지난달, 지난주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현실적으로 다음 한 걸음을 상상하게 되고, 행동을 결정하는 데도 자신이 생긴다.
자기 격려 차원에서 일 년에 두 번 '상반기/하반기에 잘한 일'을 쓰고 있다. 막 살아도 6개월로 치면 잘한 일이 하나쯤은 있다. 별로 나아진 게 없을 때도 시도해본 것들을 쓰면 기운이 난다. 요리에 더 익숙해졌다,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 신춘문예 두 군데에 투고했다, 적금통장을 깨지 않았다, 연락을 끊어 찜찜했던 사람들과 연락했다...
시간이 간다는 건 경험이 쌓인다는 뜻이다. 침대에 누운 채 보낸 한 달에도 그 시간만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방전된 나를 스트레스로부터 지키는 기능, 몸이 나을 기회를 주는 기능, 자살 시도와 나를 분리하는 기능 등.
천재도 바보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