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생애사진 100선1974년 11월 27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종교계, 학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를 망라한 각계 인사 71명이 모인 가운데 민주회복국민회의 발족식이 열려 김대중-이희호 부부도 참석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참여자들은 국민의 신망이 높은 은퇴한 윤형중 신부를 상임대표로 모시고자 하였다. 종교계 지도자로서 정부당국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이다. 함세웅이 섭외의 책임을 맡았다. 함세웅은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
제가 신부님께 찾아 갔어요.
"신부님이 상임대표를 하셔야 된답니다."
그랬더니,
"내가 몸도 아픈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그래도 제가 추천한 게 아니고 다른 분들이 다 모시자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윤형중 신부님이,
"그래? 이게 선교에 도움이 되냐?"
그러시는 거예요.
"이것이 선교의 최고입니다. 이거 하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그럼 하지"
그래서 윤형중 신부님이 상임대표가 되신 거예요. 그렇게 윤형중 신부님을 모시고, 내가 대변인이니까 이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 거죠.
또 다른 분들은 늘 연행되어 가고 변호사님들도 늘 연행되어 가시니까. 홍성우 변호사님이 장부하고 돈 50만 원을 가지고 저한테 오셨어요.
"신부님,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도저히 가지고 있지 못하겠습니다. 신부님이 갖고 계세요." 해서, 돈 50만 원과 장부를 받아서 그냥 윤형중 신부님 방에 갖다 놓았어요. 그 돈 쓸 일도 없잖아요? 그냥 뛰기만 하는 거니까. 그래서 민주회복국민회의를 75년 3월까지, 국민투표 전과 그다음까지 활발하게 이끌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주석 2)
함세웅 대변인의 활약은 대단했다.
긴급조치 1, 3호가 해제되었다고는 하지만 정국은 여전히 살얼음판이고 특히 언론상황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 해 10월 24일 동아일보ㆍ조선일보 일부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 궐기대회를 갖고 '10ㆍ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채택했다.
"자유 민주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실천에 나섰다가 결국 146명(동아 114명, 조선 32명)의 기자를 포함한 다수의 언론인들이 해직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나 민주회복국민회의 발표(성명)가 제대로 보도ㆍ논평될 리 없었다. 함세웅 대변인은 정제된 언어와 명증한 논리로 박정희 정권의 패악질을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주석
1> <한겨레 누리집>, 2022.3.14
2> <신부가 그런 일을 안하려면 뭐하려 사제가 돼?>, 58쪽.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공유하기
민주회복국민회의 함세웅 대변인의 활약은 대단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