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가는 것이 부부 아닐까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남편이 나에게 제품 양산 비용이 부족해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만, 내 월급을 줄 수 없었다. 당시 남편의 사업은 불확실했고, 월급을 준다고 한들 그 돈을 회수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게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사업으로 인해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온 가족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남편 사업이 자리 잡는 동안 내 월급은 사업 비용과 거리를 두었다. 내 월급은 가족의 생계,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그때 남편은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지만, 내 의견을 존중했다. 남편은 정부지원사업을 받고 공모전에 참여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나는 나대로 생계를 책임지며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작년, 우리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내가 퇴사하면서 남편 사업을 같이 돕게 된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같은 이야기로 만나게 되었다. 퇴사 즈음, 아직 작은 회사지만, 열심히 일하다보면 생활비는 벌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시간당 내 인건비를 계산해보니 사업을 돕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같이 사업하며 보니, 그동안 남편이 쌓아올린 것이 생각보다 탄탄했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제품에 대한 리뷰가 몇 천개 쌓여 있었고,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도 치열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지금에야 깨닫게 된 건,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했을 때는 불행했고, 의지하지 않았을 때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남편 사업을 여전히 지지할 것이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는 것이니까.
다만,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는 착각과 내가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오래 달릴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같다. 착각이 깨지는 동안 나는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다. 배우는 동안 많이 아픈 건 덤이었다.
남편의 사업을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했던 지인들은 대부분 남편이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들의 직장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말은 30대까지만 유효하고, 연장에 연장을 하더라도 60을 넘기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직장인으로서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로 부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많다. 이미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다. 직장인의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직장인의 '삶만' 바라보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시대를 탓할 수도 없고, 시대를 바꿔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만약 배우자가 사업을 한다면, 두 가지를 권유하고 싶다. 첫째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될 때까지 다른 한쪽은 현금흐름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생계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서로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재촉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를 믿고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다. 성공은 돈과 시간, 노력, 운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가족의 생계가 위험해질 수 있는데, 올인하거나 생계비가 없으면 조급해진다.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게 되고, 사업은 힘들어진다.
남편이 가끔 말한다. 내 월급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품과 회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사업에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도움이라는 것을. 어쩌면 부부의 세계는 서로에 대한 기대보다 각자 스스로 섰을 때, 더욱 굳건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확실 한 건, 우리는 각자 서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표라는 영역에서, 나는 마케팅이라는 영역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써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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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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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 필요하다는 남편에게 내 월급을 주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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