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일하는데,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많은 일을 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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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남편의 사업 참여 여부를 고민할 때 생각했던 걸림돌 중 하나는 '남편과 같이 일할 수 있는가'였다. 집안일로도 종종 갈등을 빚고 싸우는데, 회사일이라고 갈등이 없겠는가. 싸울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같이 일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마케팅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제품은 좋았고, 마케팅을 좀 잘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급여는 다니던 회사보다 못했지만, 주 1회 출근, 나머지는 재택근무라는 매력적인 조건도 한몫했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 남편의 일을 아내가 돕는 건데(그러니까 부부의 일인데) 너무 계산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냉정하니까 말이다.
예전에 한 사업가는 부부가 같이 사업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리고 같이 사업을 하게 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부부가 같이 사업을 하면 시너지 효과도 2배, 나쁜 효과도 2배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나쁠 때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느낌이었다.
장점이라면 모든 일을 내 일처럼 하는 아바타가 한 명 더 생긴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장이자 직원인 셈이다. 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일하는데,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많은 일을 그가 한다. 고객이 문의해오는 기술적인 문제나 설치는 모두 남편 담당이다. 정산과 세금 부분도 그의 담당이다. 광고와 마케팅은 전적으로 나에게 일임한다.
남편은 내가 권한과 책임을 다 부여 받았을 때 능력 발휘가 가장 잘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 결과 보고만 듣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만 같이 할 뿐, 모든 건 내 의지대로 하도록 내버려둔다. 나는 이 자유로움과 책임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모든 회사 일이 그렇듯, 누구의 일도 아니면서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의 영역이 존재한다. 일명 '그레이존'이라 불리는 영역이다. 회사에서 그레이존은 서로 안 하겠다고 핑퐁치다가 싸움으로 끝이 나곤 했는데, 사업의 그레이존은 달랐다. 서로 하겠다고 덤비거나, 좀 더 잘하지 못하는 걸 참지 못해 탈이 났다.
한번은 일 때문에 남편과 감정싸움을 했다. 남편은 늘 빠듯하게 업무시간을 계산하는 습관이 있다. 언젠가 오후 6시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남편은 그 주간에 다른 바쁜 일이 있어 제때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 일을 하는데 이틀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하니 남편은 자신이 하면 몇 시간이면 끝낼 수 있다면서 금방 끝낼 수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일을 맡기고 나는 다른 일을 했다. 시간이 가는 동안 계속 남편에게 몇 번이나 진행 상황을 물어봤지만, 나중에 하면 된다고 했다. 마감해야 하는 날 아침에도 남편에게 그 일을 끝냈는지 또 확인했다. 남편은 오늘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했다.
"혹시 끝내지 못할 것 같으면 이야기해. 내가 처리할게."
아침에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남편에게 전화가 온 시각은 오후 3시였다. 남편이 끝내지 못할 것 같다고, 자신이 하던 부분까지 하고, 자료 포함해서 넘겨주겠다고 했다. 마감이 오후 6시니, 남은 시간은 3시간이었다.
나는 당연히 무언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수정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메일을 열어보고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제출해야 할 서류는 하나도 작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관련 참고자료만 한 뭉텅이였다. 그 참고자료 안에서 내용을 발라내고 다시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려면 3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자료를 줄 거면 미리 이야기했었어야지!"
나름 참고 말해도 짜증이 묻어났다. 남편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나도 오늘 놀지 않았어. 하루 종일 바빴다고."
오후는 그 일로 인해 엉망이 되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를 포기하고 계속 싸울 것인가, 벌어진 일을 수습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로 했다. 그 편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둘이 나누어 일을 처리했고, 수습하고 있는 동안, 회사 일을 하는 건지 부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일은 마감을 맞추었고, 회사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부부 사이는 며칠간 해피하지 못했다. 회사 일을 가족 생활까지 감정적으로 끌고 올 수밖에 없었다. 회사 일은 회사 일, 가족 일은 가족 일. 그렇게 분리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몇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바빠 보였기 때문에 자신이 하려고 했다고. 결국 나를 배려하다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시 원래의 부부로 돌아왔지만, 이때의 경험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계속 노력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