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6일 오전(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 공격대와 교전 후 불발탄을 찾고 수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동맹이 없어서' 지금 상황에 처했다는 윤석열의 분석은 지난 30년간의 우크라이나 역사를 도외시한 결과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진 계기는 소련 해체 3년 뒤인 1994년 12월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이다. 핵탄두 1700여 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여 기, 전략핵폭격기 40대를 보유해 미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영국이 영토 및 독립을 보장해준다'는 조건 하에 핵무기 전부를 러시아에 넘겼다.
세계 비핵화를 위해 결단과 용기를 보여줬으므로,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영국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지켰어야 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독립을 어떻게든 보장했어야 마땅했다. 양해각서가 국제법적 효력이 있든 없든, 우크라이나가 그 정도의 포기를 감수했으니 적어도 미·영만큼은 의리를 지키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의리는 지켜지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당시에도 그랬다. 미국은 러시아를 비판하고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군사적 제재 조치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2014년 상황이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를 지켜줄 것처럼 공언했던 미국은 지금은 다소 '다른 사람'이 돼 있다. 물론 미국이 참여하는 금융제재도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긴 하겠지만, 그 타격으로 인해 러시아가 휘청거리기 전에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쉽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이후의 우크라이나 역사는 동맹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동맹을 과도하게 믿었기 때문에 수난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같은 동맹조약은 아니지만 '핵무기를 포기하면 영토·독립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동맹 수준의, 혹은 그 이상의 강력한 약속이다. 그런 약속을 해준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으니, 동맹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동맹을 지나치게 신뢰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윤석열 후보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과 그 이후의 상황을 근거로 동맹의 중요성을 되레 역설한다. 그는 부다페스트 '동맹조약'이 아니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된 것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라며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라는 종이 각서 하나를 믿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습니다"라고 짚었다. 그런 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이 임박하자 이 각서를 근거로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간 각서라는 것이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휴짓조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며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에 신속히 나토에 가입해야 했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런 다음에 나온 발언이 앞서 소개한 "동맹국이 없는 비동맹 국가의 외교적 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이번 사태입니다"라는 대목이다. 각서만 믿고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들어가지 않은 탓에 지금의 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이다.
나토에 신속히 가입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