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에게 전하는 자그마한 상자 안에는 초등학생 본인들이 좋아할 법한 초콜릿, 사탕, 비스킷, 과자 등 군것질거리가 다양하게 들어있다.
최육상
'아이들 마음이 참 예쁘다'는 주변 격려… 뿌듯해
택배 기사에게 전하는 자그만 상자 안에는 초등학생 본인들이 좋아할 법한 초콜릿, 사탕, 비스킷, 과자 등 군것질거리가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피곤함과 갈증을 달랠 캔 커피도 따로 준비했다.
자매는 "저희도 옷 같은 걸 택배로 시키곤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택배가 정말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며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들은, 저희가 아시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시지만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희경씨는 "아이들이 택배 기사님에게 드리는 간식 사진과 글을 제 페이스북에 올린 후에, 지인 몇 분에게 '나도 그 사진을 보고 아이들처럼 택배 기사 선물을 집 앞에 준비해 놓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게 쑥스럽긴 했지만, 여러 사람이 '아이들 마음이 참 예쁘다'는 격려를 전해올 때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큰딸 홍유경 학생은 정읍여중 3학년 진학 예정이고, 홍유민·홍세영 학생은 각각 동산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 진학 예정이다. 각각 세 살 터울인데 막내 홍세영 학생만 1년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해금 켜는 공무원"과 "훌륭한 소리꾼"이 되고픈 자매
자매의 집을 방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자매 모두 국악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고 보니 부모 홍진기·유희경 부부는 '복흥 알음알음농악단' 운영지기이자, 동산초등학교 국악 강사였다. 복흥면에 위치한 동산초등학교는 국악특수학교로 지정돼 한 학년 다섯 명씩 전교생 30명이 국악을 배우고 있다.
세 자매는 일곱 살 무렵부터 엄마 아빠한테 꽹과리와 장구, 북, 해금 등을 배웠단다. 즉석에서 해금 연주를 요청했다. 머뭇거리던 자매는 각자 본인의 해금을 들고 나와 연주를 선보였다.
유희경씨는 "유민이는 원래 남들 앞에서 연주를 안 하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연주를 다 했다"며 "방금 연주한 곡은 해금 연주 중 가장 어렵고 멋있다는 최고 작품, 해금독주곡 '지영희류 해금산조'고, 그 중에서 유민이는 '진양장단(24박)'만 쭉 연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매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 눈치를 살피던 홍유민 학생이 무겁게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답을 했다. 홍유민 학생은 국악 공부가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 학교 강사인 부모님이 매일 학교에서 국악을 지도하는 게 못내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홍유민 학생은 답변을 이어가며 "해금 켜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막내 홍세영 학생은 언니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커서 훌륭한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내친 김에 자매에게 해금 연주와 소리 한 곡조를 요청했다. 방을 벗어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낙엽이 켜켜이 쌓인 마당 한 편에 자매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언니 홍유민 학생이 앉아서 해금을 잡자, 막내 홍세영 학생이 익숙한 듯 부채를 손에 잡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열 살내기 소리꾼이 뽑아낸 당찬 소리는 쏟아지는 햇살을 가르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유희경씨는 "세영이는 영광스럽게도 고 박유전 명창 태생지(전북 순창군 복흥면 하마마을)에서 태어났다"며 "방금 세영이가 부른 건 박유전 명창의 강산제 중 '춘향가 신연맞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해금 켜는 공무원'과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자매가 들려준 해금 연주와 춘향가가 쉼 없이 따라왔다. 흐뭇한 표정으로 자매를 바라보던 부모의 표정이 따스한 햇살에 넘실넘실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