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오른쪽)와 김장환 목사.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제공
김건희씨가 종교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무속 논란에 휩싸였지만, 성직자들을 잇달아 접촉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7일엔 서울 강남구 봉은사 주지인 원명스님을 만났다. 14일에는 서울 마포구의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를 찾아갔다.
김장환 목사와의 접촉은 한 번이 아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15일까지 네 차례 만남을 가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제안으로 이뤄진 만남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 조용기 목사 빈소에서 김장환 목사는 다른 목사들과 함께 윤석열 후보에게 안수기도를 해줬다. 그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장환 목사 같은 인물을 자주 만나는 것은 무속 논란에서 벗어나는 시도로 읽힌다. 하지만, 또 다른 논란에 휩싸이는 계기가 될 여지도 없지 않다. 지난해 10월 19일의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촉발된 '전두환 논란'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전두환 위해 기도한 '여당 목사' 이야기
1934년생으로 올해 만 88세인 김장환 목사는 이른바 '여당 목사'다. 김 목사 스스로도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회고록인 <섬기며 사는 기쁨>에서 그는 "내겐 '여당 목사' '정치 목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닌다"고 자평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을 회고하는 대목에서 나온 이야기다.
박정희 정권 때만 여당 목사가 아니었다. 전두환·노태우 때도 그랬고, 김영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때도 그랬다. 이명박 때도 물론이다. 역대 정권들에 대한 그의 밀착은 2019년 12월 24일자 <중앙일보> 기사 '대통령들의 멘토 김장환 목사의 고언'을 비롯한 각종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권에 대한 밀착이 단순한 교세확장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권력자의 눈과 귀가 돼 암약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때 특히 그랬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1979년 12.12쿠데타 뒤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찾아가 구약성경 여호수아 1장 7절을 읽어줬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개역개정판)라는 구절이다.
그런 뒤 전두환과 함께 눈을 감고 "어려운 시국이니 잘 풀어나가라"는 내용의 기도를 했다. 이 기도 내용에 뭔가 부담을 느꼈는지, 기도가 끝나자 전두환이 "나는 대통령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김장환이 해준 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시키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라는 말이었다.
그는 전두환에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리"라는 구절을 읽어줬다. 그는 전두환이 형통하기를 기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형통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입증하는 일화가 회고록에 적혀 있다.
그가 "최규하 대통령이 물러나자 미국 정부 안에서는 전두환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면서 이 일화를 소개한 것을 보면,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한 1980년 8월 16일을 전후한 시점이나 그 직후에 있었던 일인 것으로 보인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로 대략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정부에 보고할 목적으로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위컴 사령관은 "전두환 장군에 대해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미국과 돈독한 관계였기에 그에게 그런 질문을 해왔던 것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박 정권 때) 청와대에서 예배를 올리는 시간에 봤는데, 남자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라며 "반미감정은 없는 것 같고, 아들(재국)을 통해서 볼 때 가정도 아주 건전한 것 같더군요"라고 위컴에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정이 중요하다" "지금 잘 수습해놓고 자유선거를 해야지"라며 전두환을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