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무고한 시민에게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이 얼마나 무서우며 살아남은 자들과 유족들에게 절대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제주의 여인들이 피붙이의 학살흔적을 찾고 위령하고 기억하기 위해 얼마나 결사적으로 노력했는지를 '인선'의 목소리를 통해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경하'는 본인이 쓴 소설('경하'는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을 연상시킨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더해 실존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지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친구 '인선'(정확히는 '인선'의 영으로 추정된다)으로부터 제주 4.3의 참극과 4.3이 남긴 상처 그리고 '인선' 어머니 '정심'의 수십년에 걸친 오빠 행적 찾기의 고투를 듣는 증인이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몇몇 대목에선 무너지는 마음을 수습할 길이 없다. 예컨대 군경을 피해 산으로 피신한 열아홉살 청년('인선'의 아버지)이 자기 대신 대살(代殺)당한 아버지를 황급히 매장하는 장면, 그 청년의 가족 모두가(그 중엔 한살짜리 젖먹이 누이동생도 있었다) 백사장에서 총살당해 시신조차 찾을 길이 없는 장면, 심부름 하느라 가까스로 화를 면한 열일곱살 언니와 열세살 여동생('인선'의 어머니)이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보리밭 속 시체더미 속에서 부모와 오빠를 찾느라 눈 덮힌 시체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장면, 총상을 입은 채 가까스로 보리밭에서 기어나온 여덟살 여동생을 두 자매가 피에 흠뻑 젖은 채 번갈아가면서 업고 바닷가 당숙집으로 걸어오는 장면,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총상으로 죽어가는 여동생의 입에 단지를 해서 수혈을 해 주는 장면 같은 것들이 그렇다.
빨갱이는 절멸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확신을 행동으로 옮겼던 미군정과 이승만과 군경과 서북청년단은 지금 없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과거 이승만 정부 등이 지녔던 절멸신념과 그닥 거리가 멀어보이지 않는 생각을 가진 집단과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끝으로 한강은 정말 필사적으로 쓴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다. 작가가 필사적으로 쓴 작품을 독자는 필사적으로 읽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피를 잉크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은이),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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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제주로... 고통스러워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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