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서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년 '3.1독립선언서'. 왼쪽 끝에 서명자 33명의 명단이 보인다.
33인유족회
1919년 3월 13일 경무총감부에서 검사 하촌정영(河村靜永)의 신문에 박동완이 답변한 내용이다.
문 : 피고가 이번 조선독립운동을 하게 된 전말을 자세히 말하라.
답 : 올 2월 20일경 기독교신보사인 내 사무소에 박희도가 와서, 나는 조선도 민족자결에 의해 독립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박희도도 찬성했다. 그 후 2월 27일 다시 박희도가 왔길래, 나는 누구든지 독립운동을 한다면 찬성하니 참여하게 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날 정오, 총독부에 청원할 서류에 날인해야 하니 정동 이필주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가니 이갑성, 박희도, 최성모, 오화영, 함태영 등이 모여 총독부에 제출한 건의서에 서명 날인을 요구하여 날인했다. 28일 청년회관에서 박희도가 오늘밤 손병희의 집에서 집합한다고 해서 오후 8시경 손병희 집에 갔다.
거기에는 건의서에 연명한 20여 명이 모여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 소동이 일어나기 쉬우므로 오후 2시 명월관 지점으로 모이는 것이 좋겠다고 논의했다. 3월 1일 명월관 지점으로 가서 음식이 나오자 경찰에 체포되었다. (주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