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현실 백령의 해안선을 다라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바닷가엔 용치가 솟아 있다. 지뢰매설지를 알리는 표지판엔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상구
그 진귀한 광경이 선사한 감동과 설렘은 쉬 가시지 않았다. 싱싱한 해물이 가득한 점심상을 앞에 놓고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그 환상에서 퍼뜩 깨어나게 한 건 분단의 현실이었다. 백령의 해안 곳곳엔 2m 높이의 철조망이 둘러쳐 있고, 바닷가엔 날카로운 용치가 서슬퍼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뢰를 조심하라는 섬뜩한 경고판도 흔하게 보였다. 철조망 사이로 북한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가장 가까이는 기껏 18km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섬의 서남쪽에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 있었다. 지난 2010년 백령 앞바다에서 마흔여섯 장병들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비극적인 사건을 추념하는 탑이다. 산화한 용사들이 내려다보는 바다는 그 날따라 조용했다. 바람도 숨을 죽인 듯 주변은 적막했다. 그 고요와 정적이 오히려 불안했다.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는데도 한껏 긴장감이 돌았다. 저 고귀한 젊은 생명들을 삼켜버린 분단의 역사는 과연 우리 대에서 막을 내릴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오늘 하루 감정의 파도가 널을 뛰었다. 백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환희와 경이, 슬픔과 분노까지 온갖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 밀려들었다 쓸려나갔다.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마지막 여정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만찬이다. 섬에 오면서 숙소 주인장께 간청했다. 돈은 따로 드릴 테니 사장님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얹어 달라고. 당신은 선뜻 그러자고 하셨다. 진정한 로컬(Local) 밥상을 만날 기회를 잡은 거였다.
백령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