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메시앙 <새의 카탈로그> 악보violet, rouge, orange 등 특정 색을 지칭하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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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사춘기의 열정, 중학교 3학년의 서푼짜리 진정성은 그 유효기간이 짧다. 브람스 교향곡을 들으며 기어이 색깔을 보겠다고 개그콘서트에나 나올 짓을 하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작곡가가 되겠다는 꿈은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니까.
다시 만난 색청의 기억
그렇게 올리비에 메시앙이니 색청이니 하는 것들은 내 삶과 무관해지는가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약 20년 후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생겨 우연히 읽게 된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를 통해서다. 이 책에서 저자 올리버 색스는 다양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뇌와 음악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데, 제14장 '청명한 녹색을 띤 조성: 공감각과 음악'에서는 올리비에 메시앙처럼 음악을 듣고 색깔을 보는 사례들이 나오는 것 아닌가!
예컨대 현대 음악 작곡가 마이클 토키는 어릴 때부터 조성에 따라 특정한 색이 보이는 조성 공감각을 경험했다. 그 색깔은 한결같았고 자발적이어서 억지로 다른 색을 떠올리려고 해도 바꿀 수 없었다. 게다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가령 사단조는 그냥 '노란색'이 아니라 '등황색', 라단조는 '부싯돌 같은 흑연색', 바단조는 '흙이나 재 같은 색'이었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 라장조는 파란색이라고 했다가 당황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공감각을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과연 소리를 듣고 어떤 방식으로 색이 보인다는 것일까? 마이클 토키에게는 색깔이 자기 앞에서 '스크린처럼' 투명하고 밝게 빛나는데, 눈을 통해 보이는 색들과는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노란색 벽을 쳐다보면서 파란색을 연상시키는 곡을 듣더라도 두 색이 섞여 녹색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가 공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색은 순전히 내적인 성격의 것이어서 외부의 색과 섞일 염려가 전혀 없지만, 주관적이긴 해도 너무 강렬해서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색청 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색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작곡가 데이비드 콜드웰도 색청이지만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앞서 언급한 토키의 사례와는 다른 색깔이 보인다. 심지어는 색깔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감각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취리히 대학의 지안 벨리, 마히엘라 에슬렌, 루츠 얀케는 음악-색깔 공감각과 음악-맛 공감각을 동시에 소유한 어떤 음악가의 사례를 연구했는데, 그 음악가는 특정한 음정을 들을 때마다 해당 음정과 연관된 맛을 느낀다. 소리를 듣고 맛이 느껴지다니! 잘만 활용하면 칼로리 걱정 없이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지금의 나에겐 색청보다 훨씬 탐나는 능력이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이런 공감각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색청의 경우, 청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과 시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동시에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리가 소리를 듣는다는 행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단 나를 둘러싼 공기의 압력 변화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귓속 고막이 진동하면, 청각 세포가 그 진동을 포착해 전기신호로 변환한다. 이 전기신호는 신경계통을 통해 청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측두엽)로 전해지며, 측두엽 뇌세포들의 활동을 통해 우리가 '소리'라고 느끼는 이미지로 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