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처음 술집에 갔던 날, 세상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해줬다. 그렇게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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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18살 생일이 지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던 날, 선생님은 이제 너희들도 '어른'이 됐다며 축하해주셨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처음 술집에 갔던 날, 세상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해줬다.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던 날에는 "우리 딸 이제 다 컸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주민등록증이 있다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직장에서 돈을 번다고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포근한 엄마 품이 좋고, 아빠가 어딘가로 마중 나와 주는 순간이 좋다. 학교 다닐 때처럼 아침마다 회사에 늦을까 뛰는 것도 똑같고,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배꼽을 잡고 웃는 것도 변함없다.
아직도 그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걷다가 넘어지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불안감에 문득 울음이 터지고, 누군가의 무심한 한 마디에 쉽게 상처 받기도 한다.
최대한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뒤로 어른이 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았다.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키우기 위해 하루를 책임감 있게 보내야 했다.
귀찮은 마음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빨래를 쌓아두고,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않으면 더럽혀진 집과 함께 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나를 지키기 위해 어설프지만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길에 가까운 시장에 들러 재료들을 샀다.
내 돈을 주고 가지를... 사?!
지금껏 누군가 요리해 놓은 완성된 음식만 먹다가 날 것의 재료를 사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재밌어졌다. 어느 날은 길쭉하고 선명한 보라색을 띤 가지가 유독 탐스러워 보였다.
"몸에 좋으니까, 제발 한 입만 먹어봐."
어릴 적 엄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절대 입을 벌리지 않았던 것이 가지 요리였다. 물컹하고 흐물흐물한 식감이 불쾌했다. 입 안에서 툭 하고 터지는 축축함도 싫었다. 그래서 밥상에 가지 요리가 올라오는 날이면 늘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시장에서 내 돈을 주고 가지를 사 왔다. 문득 가지의 진짜 맛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