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노스밴쿠버의 한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 실루엣, 남쪽에서 난 산불로 인해 강화된 색의 태양과 하늘이 보이고 있다. (사진 Jonathan Hayward/The Canadian Press via AP)
연합뉴스/AP
B.C.주 주민들이 이처럼 전례없는 최악의 여름을 보내는 가운데, 병원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6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기능하긴 했지만, 세계 기상단체가 21가지 기후모델과 통계장치들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폭염의 가능성을 150배 가까이 높인 건 바로 기후변화였다.
당시 B.C.주 넬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응급실장으로 일하고 있던 카일 메리트 박사는 울혈성 심부전과 당뇨를 앓고 있던 70대 여성을 진찰하게 됐다. 병세가 악화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은 그 여성을 치료하면서 카일 박사는 근본 원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사병, 탈수, 호흡 문제 등 그 여성이 보인 증상들은 전부 다 한 가지 현상, 즉 쉼없이 계속된 폭염과 결부돼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에어컨도 없는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던 여성을 그대로 돌려보낸다면 상태가 악화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결국 박사는 여성을 입원시키면서 한 번도 적어본 적 없는 진단명을 차트에 기록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 이로써 그 여성은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됐다.
"원인 놔두고 증상만 본다면 우리는 점점 더..."
메리트 박사는 지난 여름 기상이변이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한 몇몇 환자들의 진료기록에 같은 용어를 적어 넣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근본 원인을 살피지 않고 증상만을 치료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점점 더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전까지는 자신도 질병의 하나로서 기후변화라는 진단을 내린 적이 없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기후변화가 그저 질병에 대한 '기여 요인' 정도로 간과돼선 안된다. 이제 의사들이 기후변화를 의학적 진단의 하나로 포함시켜야 할 때가 됐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호흡기 의학과장 크리스 칼스텐 박사는 이번 여름의 기상이변이 기후과학과 의학 사이에 현존하는 간극을 부각시켰다고 진단한다. 폭염과 사망 사이에는 거시적인 수준에서 분명한 관련성이 있지만, 기상이변과 개인적인 사례를 연결짓는 것은 훨씬 복잡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그 연결고리의 밀접성을 밝혀내고 환경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
메리트 박사는 기후변화가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에어컨을 살 여유가 되지 않는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 (산불로 인한) 연기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그런 이들임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근본 원인을 살피고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우리 의사들의 책임입니다."
크리스 칼스텐 박사 역시 기상이변과 관련한 인권과 정부의 지원에 대해 언급했다. 기상이변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음이 연구와 경험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정화 장치와 에어컨 같은 물품의 이용은 어쩌면 '인권'으로 간주돼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폭염에도) 에어컨이 없는, 구입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을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사소한 사안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메리트 박사의 '기후변화' 진단은 동료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박사의 견해에 동조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40명이 모여 '지구 건강을 위한 의사와 간호사들'이라는 이름의 내부그룹을 결성했다. 그들은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내걸었다.
"의사와 간호사로서 우리는 기후변화가 환자와 공동체에 미치는 신체적 정신적 영향을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이미 과중한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의료체계를 잠식할 위험이 있는, 다가오는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 예고된 재앙... 의사이고 간호사인 우리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