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평민당 대선후보로 유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의 역사에도 없는 대군중이 지금 여의도 양쪽은 물론이고 고수부지까지 꽉 메웠습니다.
여러분, 나는 여기서 선언합니다. 이번 선거는 오늘로써 김대중이가 승리했다, 김대중이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4천 2백만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이 승리했다! 여러분 기뻐합시다.
이제 우리의 승리를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이 승리를 막았다가는, 그런 자들의 운명은 제2의 이승만, 제2의 박정희의 운명을 당하고야 말 것이라고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지금 가장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을 하는 김대중이,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언론은 이 김대중이만 몰아붙이는 이 현실 이것을, 여러분이 방치하지 않고 이렇게 수백만의 인파가 나와서, 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나는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지금 노태우씨는 부정선거를 전면적으로 획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어떻게 보면 참으로 슬프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한치 앞을 못보는 거요. 관권선거, 금력선거, 신문과 TV를 자기 사물화시킨 선거, 이렇게 해서 부정해서 노태우씨가 대통령 해먹을 것 같습니까? 부정선거를 즉각 중지해라. 만일 중지 안 했다가는 6월 투쟁에서 그 위대한 역량을 보인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본떼를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나는 통일민주당에 제안합니다. 전국 10개 도청소재지를 김영삼총재와 내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와서,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여러분의 심판을 받자는 것을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주석 4)
김대중 후보는 1971년의 대선과 같이 이번 선거에서도 전력투구했다. 후발 주자로서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을 선거유세로 커버하고자 전국을 누볐다. 평민당의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후보와 유세반은 115회에 걸쳐 전국에서 유세를 벌였다. 산간오지의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 지역을 후보가 직접 찾아가 연설을 하였다.
평민당은 특히 호남권은 절대우세 지역으로 묶어 놓고 유권자가 많은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을 집중공략하며, 그 밖의 중부지역은 김후보의 직접유세로 표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김후보는 중부권과 영ㆍ호남권을 지그재그로 다니며 유세를 벌이는 바람작전을 일으켰는데, 이는 늦은 창당으로 인한 조직가동의 후발성과 자금의 취약성 때문이었다. 이 바람을 김후보는 수도권으로 몰아 서울에서만 여의도(11월 29일)와 보라매공원(12월 13일)에서 1백만이 넘는 인파를 끌어 모았으며 수도권지역에서만 20여 회의 연설회를 가졌다.
민주회복과 서민층 대변을 주 이슈로 내세운 평민당은 광주사태 당시 ○○사단장이었던 정중웅씨를 영입, 광주사태를 집중거론, 노후보를 비난했으며 중반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김영삼 후보도 공격, 야당간의 선거전도 격렬했다. (주석 5)
주석
3> 이낙연, <80년대 정치현장>, 66쪽. 동아일보사, 1989.
4> 앞의 책, 67~ 70쪽.
5> <동아연감>, 1988년, 59쪽, 동아일보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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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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