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암놈꽁무니에 긴 산란관을 갖고 있다.
이상헌
그는 세계 최초의 곤충학 서적인 촉직경(促織經)을 펴낼 정도로 귀뚜라미의 번식과 조련 방법에 골몰했다. 실권을 장악한 가사도는 전횡을 일삼다가 말년에 부하 장수에 의해서 독살 당한다.
귀뚜라미 싸움은 이후에도 3백 여년 간이나 성행하였다. 명대의 선덕제는 귀뚜라미 전문 사육사를 두면서 두실솔에 열광했고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가장 크게 번성하여 도박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싸움에서 우승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말 한필 가격에 거래되었으니 전국민이 빠져든 버블이었다.
현재도 명맥이 이어져 귀뚜라미 시장이 열리고 있다. 베이징의 화냐오(花鳥) 시장은 조류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애완동물을 파는 곳이다. 이 시장 안에는 밍충제(鳴蟲街)라고 하는 거리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우는 곤충'을 파는 거리다. 지금도 서민들의 오락거리로 귀뚜라미가 매매되고 있으며 외국인에게 더 이름이 알려진 장소다.
귀뚜라미 싸움은 활동이 왕성한 8, 9월에 절정을 이룬다. 직접 구경한 사람에 의하면 귀뚜라미가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한다. 정성들여 보살핀 사육사의 명령에 따라 자세를 전후좌우로 바꾼다고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했던 1988년에는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마지막 황제>가 개봉 되었다. 청나라의 어린 황제 '푸이'가 신해혁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꼭두각시 황제가 되었다가, 중공의 문화대혁명 때 평민으로 병사하는 일생을 보여준다.
세 살에 등극한 푸이는 궁궐의 한 쪽에서 들리는 벌레 울음 소리를 따라간다. 한 노인이 가슴 속에서 여치를 꺼내 푸이에게 건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경여치(Gampsocleis gratiosa)인데 울음소리는 귀뚜라미였다. 곤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관계자들이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음향효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