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 도문 근교의 초모정자산으로 최초의 독립전쟁 승첩지 봉오동전적지다(2005. 6. 촬영).
박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그 누구도 무릎을 꿇는다는, 세월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고교 시절 3년간 신문배달을 했다. 그때는 조석간제라 하루에 두 차례나 신문이 나왔다.
게다가 이즈음과 같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단지는 없었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매우 귀하던 시절로 배달구역은 엄청 넓었다. 첫 배달구역은 종로구 가회동이었는데, 가회동뿐 아니라, 그 옆 삼청동 고지대 일부까지도 맡았다.
대학 3, 4학년 시절은 학훈단 후보생 시절로 군사훈련 시단은 구보를 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광주보병학교에 입교하고자 용산역에서 열차를 탄 뒤 이튿날 새벽 송정리역에서 내렸다.
그때 마중 나온 교관이 송정리역 광장에 집합시킨 뒤 "목표! 상무대 뛰어 갓!"이라는 말과 함께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 시간부터 16주 교육기간 내내 구보였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보병은 3보 이상 구보, 보병 땅개 란 말이었다.
교육 기간 내내 엄청 뛰고 박박 기었다. 보병학교 수료 후 배치된 부대는 보병 제26사단 경계 부대였는데, 보직은 소총소대장이었다. 거의 날마다 잠복호 순찰과 수색 등으로 서부전선 산야를 전천후로 누볐다. 아무튼 그 시절은 하루 종일 걸어도 다리가 아픈 줄 몰랐다. 그렇게 단련된 탓인지 나는 늘그막에 현대사 역사현장 답사를 참 많이 다녔다.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대륙 곳곳에 흩어진 동삼성, 곧 드넓은 만주 지역의 남만주, 북만주 헤이룽장성 일대를 4차례나 누볐다. 답사현장에서 안내원이 지형설명으로 끝내려고 하면 나는 그를 기다리게 한 뒤,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지형을 살피고 카메라에 담곤 했다.
"어르신, 산삼 잡수셨습니까?"
"난 그런 것 먹어본 적 없습니다. 나는 보병장교 출신이요."
"아, 네. 어쩐지..."
그 대답에 안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