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사철도 아닌데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 기준으로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0.16%로 지난해 8월 첫째 주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109주 연속 상승이라고 한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도 전주보다 0.28% 올라 6년 3개월 만에 주간 상승률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세가격 상승세는 아파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KB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7월말 기준으로 서울 지역 연립주택의 전세가격도 전월 대비 0.78% 상승했으며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11.7%에 달했다. 무주택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서울 아파트값과 전세값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가격으로 치솟았기 때문에 연립주택 전세를 구하려 해도 부담이 작지 않다.
조중동과 경제신문 등 보수언론은 '임대차 3법'과 '공급 부족' 때문에 전세가격이 올랐으니 규제를 풀고 시장에 맡기라고 한다. 야당인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진단도 틀렸고 처방도 틀렸다. 전세가격 상승은 2020년 7월 말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나타난 현상으로, 몇 년간 주택가격이 급등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연한 갭투자와 손쉬운 전세자금 대출이 전세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적 요인도 작용한다.
임대차 3법 1년, 실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해 여름,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 속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어 이른바 임대차 3법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임대차 3법은 불공정한 임대차 관계를 바로잡고 전세가격 폭등으로부터 무주택 서민들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법이 되지 못했다. 전월세를 사는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폭등한 전월세값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게다가 예외조항들 때문에 법에 정해진 권리마저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는 사유들을 정해놓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임대인 또는 임대인의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하려는 경우 임차인은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여러 선진국의 경우 임차인에게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리를 주고 불가피한 경우 임대인이 퇴거 사유(임대인이 꼭 그 집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등)를 증명하게 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러한 예외조항이 현실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보내거나 보증금을 5% 넘게 증액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면 임차인들이 지난 1년 동안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무엇이 불안한지를 실제 사례로 살펴보자.
사례 #1
서울 은평구의 빌라에 거주하던 ㄱ씨는 올해 1월, 집주인이 직접 거주할 계획이니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7월까지 나가면 된다고 해서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집을 구하러 돌아다녀 보니 공공재개발 등의 이유로 서울 전역의 빌라 전세값이 오르고 있음을 체감했다. 주말마다 전셋집을 보러 다니다가, 결국 대출로 보증금을 증액해서 지난 7월 인근의 빌라로 이사했다. 원래 살던 집에 정말로 집주인이 들어올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찾아가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생활에 바쁘니 그런 다툼을 일으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대인이 실거주할 경우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제한 사유로 인정된다. 허위로 실거주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밝혀져도 처벌 조항은 없으며, 실거주를 해야 하는 기간에 관해서도 규정이 없다. 물론 모든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를 허위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임대료를 시세만큼 올려받고 싶은 임대인들은 실거주 명분으로 임차인을 내보내거나 실거주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을 할 여지가 있다.
사례 #2
세종시에서 보증금 1억7000만원을 주고 전셋집에 들어왔던 ㄴ씨는 올해 10월에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다. 집주인으로부터 실거주할 예정이니 내년 2월까지 나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사를 해야 할 형편인데, 2년 사이에 전세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주변 시세는 3억 5000만~4억원에 형성되어 있고 매물이 많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집주인이 정말 실거주할 예정인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사례 #3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거주하던 ㅁ씨는 전세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세 시세가 5억 이상 올라 있어서 그런지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받고 싶은 눈치였다. 우선 집주인은 보증금 5% 인상이 아닌 대폭 인상을 요구했고, 대폭 인상을 해주지 않으면 직계 존비속이 입주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ㅁ씨는 보증금을 1억5000만 원 올려주면서 '합의 갱신'으로 재계약을 했다.
이처럼 집주인(또는 직계 존비속)이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는데도 실거주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경우 현실에서 을의 입장인 임차인들은 제대로 대항하기가 어렵다. 국토부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 등 관계 기관들도 집주인의 이런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개의 경우 임차인들은 임대인과 협상을 통해 임대료를 증액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상한제 5%는 무력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