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손 모내기 현장함께 속도를 맞춰가며 모를 심어나간다.
김동광
두 명의 줄잡이가 논을 좌우로 가로질러 못줄을 잡는다. 아이들이 일렬로 서서 논에 들어갔다. 난생 처음 진흙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온다.
들어가자마자 두려움에 주저하며 걸음 떼기를 망설이는 아이, 한 걸음 떼려다 균형을 못 잡고 엉덩방아를 찧은 아이, 어색함도 잠시 진흙으로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아이, 익숙한 솜씨로 자기 구역의 모를 심어나가는 아이 등 각양각색이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함께 논에 들어간 어른들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웃고 떠드는 소리로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모내기는 못줄을 따라 길게 한 줄씩 심으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이라 서툴고 속도가 제각각인 아이들이 심은 모들은 삐뚤삐뚤 듬성듬성이다.
한바탕 큰 소동과 같은 모내기가 끝났다. 몸은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함께 웃었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차 올랐다. 힘든 일이 놀이가 되고 배움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심은 벼가 자라나 쌀이 되는 '한해살이'를 매일 지켜보며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농부학교'라는 낯선 세계속으로
배움은 익숙한 것에 관한 반복이 아니다. 배움은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낯설고 어렵고 두려운 것들을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껍질을 깨나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린이농부학교'에서 연중 농사를 짓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농사'라는 불편하고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새로운 배움을 개척해 나가길 바랐다. 한번 하고 마는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봄여름가을겨울 꾸준한 노동이 되어야 한다.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성장에 관해 감수성을 갖고,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이해하면 좋겠다. '나'는 세상만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계망속에서 성장하는 생태적 존재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마을공동체의 일원이지만 지역 안에서 별다른 역할도 없고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어린이농부학교'를 통해 학교와 마을이 연결되고, 학교가 마을 바깥의 '외로운 섬'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 공생하는 유기적 공동체의 모습을 농사 활동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밭농사 구역, 논농사 구역, 과수 구역으로 나뉘어진 '희망농장'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한다. 각자의 이름을 붙인 매실나무를 돌보고 가꾼다. 매일 농장에 들러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작물들이 잘 자라날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인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농장은 '풀과의 전쟁'이다. 호미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풀을 맨 아이는 그날의 '농사일지'에 "풀 지옥에 빠진 것 같다"고 적었다.
유기농으로 수확한 작물은 필요한만큼 나누거나 무인장터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판매한다. 가족 단위로 와서 채소를 직접 따고 무게를 잰 다음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고 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상추, 감자, 양배추, 고추, 토마토 등 직접 키운 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밥상에 올라오는지 경험하는 것이다.
농사 현장에서 땀 흘려 본 아이들은 우리 삶과는 뗄 수 없는 '농'이 갖는 귀중한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린이농부학교'라는 낯선 세상에는 농사-생태-인문-사회-경제가 모두 들어있다. 학교와 마을을 넘어서고 다양한 과목이 융합한다. 땅을 통해 배운다. 땅을 통해 학교와 마을이,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된다. 땅을 통해 교육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간다.
좌충우돌 모내기 후일담
모내기 다음날 논에 가보니 아이들이 심은 모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서툰 솜씨로 심은 태가 났다. 이양기로 심어 정확한 간격으로 열맞춰 서 있는 바로 옆 논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다시 들어가 수습하지 않으면 올해 쌀농사가 '나 홀로 흉년'이 될 판이다.
주말에 학부모들이 농장에 모였다. 쓰러진 모를 일으키고 듬성듬성 빈 곳에 다시 모를 심었다. 농장 곳곳에서 진군하듯이 밀려오는 풀도 멨다. 함께 일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관한 고민들도 나눈다.
농장은 아이들의 교육 활동만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학부모들, 선생님들, 마을주민들이 오가며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곳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환대하며 관계를 맺는 마을의 플랫폼이기도 하다.
마을의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고 이야기해야 공동체는 희망을 꿈 꿀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이름 붙인 이 농장의 이름이 '희망농장'인 이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공유하기
모 심고, 풀 매는 어린이들... 1년 농사의 시작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