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생각이 절실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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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장마철에 건조기를 샀어야 하는데... 아니야 지금 집도 좁아. 물건 줄이기로 했잖아...'
나는 몇 년째 이러고 있다. 무한 생성되는 미로를 헤매듯 빨래 건조기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10년째에 접어든 통돌이 세탁기는 가끔 탈수를 못 한다. 경증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한 번씩 오작동을 일으킨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도로 집어넣고 탈수 버튼을 누를 때면 건조기 구매의 충동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서도 이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건 두 조건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편리함과 환경. 태극기의 푸른색과 붉은색처럼 두 조건은 우리 가족의 세계에 공존하며 결코 하나를 지워낼 수 없다.
조건 하나, 노동량을 줄이고 싶은 육아 부부. 나는 집에서 빨래와 건조, 수납 담당이다. 대학생 무렵부터 자취를 해 왔기에 선뜻 빨래를 맡겠다고 나섰는데 오판이었다. 지금 우리 집은 4인 가구이며 4인 가구가 생산하는 빨랫감과 정리 노동의 양은 상당하다. 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아주 고강도 노동은 아니나 품과 시간이 든다. 강도는 높지만 빈도가 낮은 화장실 청소와는 성질이 다르다.
매번 시간 맞춰 세탁기를 가동하고, 수동 건조대에 널고, 마른 옷감을 개키는 일은 때때로 버겁다. 더구나 나는 빨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설거지를 비롯한 식사 뒤처리와 방 닦기, 크고 작은 아이들 돌봄까지 일일이 열거하자면 쪼잔해지는 가사노동이 언제나 쌓여있다. 아내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시간에 허덕이고, 커피 없이는 저녁까지 활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럴 때 찾아드는 생각. 돈이 행복을 보장해줄 수는 없지만, 시간은 벌어다 줄 수 있다. 시간은 금덩이만큼 소중하다.
건조기의 유혹이 심한 이유 중 하나는 날씨 변수에 있다. 빨래 건조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2020년처럼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지면 뽀송뽀송한 자연 건조를 기대하기 힘들다. 안 그래도 지친 상태로 퇴근하는데 집에 와서까지 빨래와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경제적으로 걱정 없는 상태를 지향한다. 돈을 두 배로 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여유를 누리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사 노동은 항시 존재한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하여 맞벌이를 하는데, 맞벌이로 인해 가사 노동이 버거워진다.
피곤한 날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내게서 빠져나가는 흐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생을 낭비하는 듯한 감각마저 든다. 이런 감정은 가전을 풀 세트로 갖춘 지인 집을 방문하거나 SNS를 할 때 더욱 격해진다.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건조기를 사자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은 부담을 지고 있는 아내는 왜 거절했을까. 보통은 내친김에 식기세척기까지 사자며 환영할 만한 제안인데.
아내의 입장은 명료하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려면 일정량의 육체 노동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본다. 노동을 부정하고 거부할수록 우리는 기계나 외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외부 위탁 비용이 증가한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럼 우리는 일을 결코 그만둘 수 없고, 한 번 정착된 의존 성향은 개선되지 않는다. 편리함의 역설이다. 듣다 보면 묘하게 설득되어 어느새 방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건조기를 사고 싶을 때마다 쓰레기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