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행사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보면 아주 재밌는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학부모 참여자를 소개하는 데 '목동 중고교생 학부모'라고 써놓은 것이다.
박용진 의원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이 입시와 교육 특구의 여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입시는 이른바 '교육 사다리'의 통로가 될 수 있으니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걸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한 면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를 중심에 놓고 교육을 논한다 하더라도 교육 특구에 사는 사람들의 담론을 중심으로 입시 문제가 논의된다면 여기서도 하나의 여론 왜곡이 나타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치적으로 여야,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교육 담론을 주도하는 층이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의구심은 교육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정책 집행 권력에 가까이 있거나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사는 지역이 교육 특구에 몰려 있어서 이에 대한 비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대책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다 강남에 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교육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교육을 논하는 자리에서 학부모가 사는 특정 지역을 부각시키는 국회의원실의 행태는 그런 의미에서 교육 담론 시장의 심각한 문제점을 상징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대형 사교육 기관 출신들의 과도한 입김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교육 담론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인강 1타 강사 출신이나 대형 사교육 기관의 원장들이 교육 정책에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20세기 학력고사 시절에도 대형 학원에서 내는 보도 자료들이 주요 입시 관련 기사의 소스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주요 대학의 예상 커트라인과 재수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험 대비 기사 등이 주요 내용이었지 이렇게 교육 정책에 대하여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교육 정책에 대한 비난을 한다 해도 인상비평에 근거한 스케치 기사 수준이었지, 요즘처럼 교육 정책에 대한 구체적 방향성까지 지시하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었다. 이것이 교육산업의 자본력이 커지면서 국가 정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이기 때문에 담론계에 다양한 목소리가 들어오는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 담론계에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으로까지 나타나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사교육이 대한민국에서 나름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거대 자본 사교육과 마을에 있는 보습학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대형 사교육업계의 목소리에 편중된 시야가 전해지는 것까지는 볼 줄 모른다 하더라도, 상업적 이해관계가 국가 정책 결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학부모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책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듯이, 교육도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다양한 학부모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가 주어진 지역, 발언권이 주어진 계층의 목소리만 듣게 되면 공교육이 나가야 할 방향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우리는 같은 학부모라 하더라도 어느 학부모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학생 중에 일류 대학을 가고, 넓게 잡아서 속된 말로 인(in)서울 대학을 가는 학생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입시 문제가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중요하고 큰 문제라 하더라도, 우리 교육이 여기에만 매몰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점에서 매우 명확하다.
교육계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교육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비단 현장 교사를 이런 세미나에 초청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교육에 대한 단편적 견해를 더욱 확대 심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교사의 목소리를 들을 때도 매우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교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학교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고 제대로 된 파악을 하고 싶다면, 일반고에 오래 근무하면서 평생 담임을 맡으며 학생들과 부대끼며 교직생활을 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분들은 현장 깊숙한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담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별다른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러기에 잘 들리지 않지만, 진정 대한민국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이런 목소리를 찾아가서 들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도 무슨 일류, 이류, 삼류 고등학교가 있다는 듯이 교사가 재직하는 학교의 학생들 학력 수준에 따라 교사를 평가하는 걸 보면, 현장 교사로서 실소를 금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출발점 진단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 간 학력 비교는 교육학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게 버젓이 교육계에서 횡행하면서 우리 교육의 난맥을 심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