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계산대 화면에 떠있는 기부 독려 화면. 계산원에게 기부의사를 밝히면, 계산해야 할 금액에 기부금액이 더해진다.
김수진
아이들도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부를 몸에 익힌다. 캐나다의 겨울은 춥고 눈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의 매일 스노우 팬츠와 스노우 부츠를 착용하고 학교에 간다. 때문에 겨울이 다가오면 학교는 지역의 소외층 아이들을 위해 방한 외투, 스노우 팬츠, 스노우 부츠, 스노우 장갑 등의 겨울장비를 기부해달라는 메일을 가정으로 보낸다.
그렇게 모여든 겨울장비들은 필요한 가정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지역센터에 비치되는데, 사이즈별로 분류 정리하는 작업에 봉사자로 참여했던 친구가 며칠 동안 겨울장비 산에 파묻혀 지냈다고 혀를 내둘렀을 만큼 그 양이 많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파스타 면 같은 마른 음식과 통조림을 기부해달라는 메일도 받게 된다. 큰 아이는 자기네 반이 제일 많이 모아야 한다며 양껏 이고 지고 학교에 간다. 가장 많이 모은 반에는 교장선생님이 피자를 쏘신단다. 모인 음식들은 아이들이 직접 학교 옆 교회에 전달한다.
아이들은 전국적 규모로 기부금을 모집하는 행사에도 매년 참여한다. 골육종을 앓아 다리를 절단한 상태에서도 캐나다 전역을 달리며 암연구 기금을 모집하며 희망을 전했던 '테리 폭스'의 뜻을 이어받은 행사, 테리 폭스 런(Terry Fox Run)이 대표적이다. 아이들은 몇 주간 친척이나 지인들에게서 모은 기부금을 학교에 전달하고, 행사 당일에는 학교나 주변 공원을 달리며 테리 폭스의 메시지를 새긴다. '점프 로프 포 펀(Jump Rope For Fun)' 역시 비슷한 방식인데, 심장병과 뇌졸중 연구 및 환자를 돕기 위해 아이들이 기부금을 모집한 뒤 당일에는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이용한 갖가지 놀이를 즐긴다.
무더운 여름날 학교 점심시간에 50센트, 1달러짜리 '쭈쭈바'를 사먹거나, 부모들이 자원봉사로 집에서 구워 보낸 머핀이나 쿠키를 사먹는 날도 아이들이 즐겁게 기부에 참여하는 날이다. 수익금은 졸업생들의 졸업여행 기금에 보태진다. 맛난 간식을 사먹음으로써 기부자가 됐던 어린 아이들은 졸업생이 되면 수혜자로 신분이 바뀐다.
장례식장과 공원에서는
캐나다의 기부문화는 장례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캐나다와 한국의 장례문화는 여러모로 차이가 많은데, 특히 조의금에 있어 그렇다. 한국에서는 고인을 애도하고 유가족을 돕는다는 의미로 조의금을 전달하지만, 캐나다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 대신 장례식장 입구에 카드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비치해두고, 고인이 머물던 병원 등 가족이 지정한 곳에 기부금을 전달하도록 독려한다.
이렇게 기부가 생활화된 캐나다인들의 기부 흔적은 동네 공원에서도 발견된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OO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등의 글귀가 벤치나 다리 등의 시설물에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떠난 이를 기억하며 가족들이 시에 기증한 것이다. 생전에 고인이 자주 다니던 공원에 기부하는 것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시민들에게는 편의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처음 이곳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후짐'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가보면 동네 쇼핑센터 수준이었고, 엘리베이터도 한국의 세련된 모양새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은행에 가면 번호표를 뽑는 대신 꼬불꼬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기술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나라, 캐나다를 분명 선진국이라 느끼는 이유는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당연히 여겨지는 사회, 기부가 일상에 배어 있는 사회라는 사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