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본경선 합동토론회에 참가한 박성훈(왼쪽), 박형준(가운데), 이언주(오른쪽) 예비후보.
국민의힘 유튜브 오른소리
박인영, 이언주 두 후보 모두 이번 보궐선거의 배경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제신문 유튜브 콘텐츠 '독한청문회'에서 박인영 후보는 "권력 관계에서 여성은 늘 약자라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고, 이언주 후보는 "부산의 가부장적 문화를 느낀다며 토목과 건설 중심의 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오거돈씨 '사고' 때문에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여성 후보와 경쟁하는 게 껄끄럽다" 혹은 "오거돈씨 측근이 아니다"라며 여성 후보를 기피하거나, 책임을 회피한 발언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보궐선거 배경에 대한 이해는 주요한 후보 자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주목한 기사는 없었다. 성평등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여성정치인의 몫으로만 할당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여성유권자와 비교적 동질한 경험이 있는 여성정치인의 입장을 이번 선거의 의미와 연결하는 시도가 미미해 아쉬웠다.
국민의힘은 3월 4일, 더불어민주당은 3월 6일 부산시장 후보가 결정됐다. 지역언론의 관심은 경선 2위를 기록한 남성후보, 박성훈과 변성완에게 쏠렸다. 두 여성후보의 성과에 주목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 최대 승자는 박성훈이라는 평가", "경선이 진행될수록 그(변성완)의 저력이 두드러져"라며 남성정치인의 성과를 강조함과 동시에 "차세대 정치인으로서 차기 행보를 도모할 동력을 얻게 됐다", "부산 발전을 이끌 새 리더를 얻은 것"이라 전망함으로써 새롭게 정치권에 등장한 두 남성정치인의 정치 생명에 활력을 더했다.
3월 8일 여성의 날에 국제신문은 <'유리 천장' 못 깬 여야 경선 여성 후보>(4면)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여성 예비후보의 도전이 모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해당 기사는 이언주 후보의 '여성시장론'과 엄마와 가족이 행복한 도시·성폭력 제로도시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제2공약'을 언급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언주 후보의 여타 공약, 선거 전략 중 성평등 이슈만을 콕 짚어 제시했다. 전임 시장의 성비위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후보의 '패배요인'으로 뚜렷한 근거 없이 성평등 이슈를 지목한 것은 심히 유감스러웠다.
기사의 마지막 단락은 다음과 같다.
70년대생 젊은 여성 후보인 이언주 박인영 두 예비후보의 도전은 신선한 활력을 주었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정서가 강한 부산에서 중량감과 안정감을 주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각각 박형준 김영춘 대세론을 뛰어넘기 위해 1위 후보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면서 자기만의 정책 역량과 콘텐츠를 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선거 이슈가 초반 '오거돈 성비위'에서 가덕신공항과 불법 사찰 등으로 전환된 것도 여성 후보들에는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차 반복하지만, 여당과 제1야당의 경선 후보로 '여성'이 동시에 참여한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기사는 이런 의미에 주목하기 보다는, 여성 정치인의 도전을 '신선한 활력'쯤으로 평가절하했다. 더구나 중량감과 안정감을 주기에 젊은 여성 후보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전하면서 성 편견을 강화했다. 정치권의 남성중심 문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데 대한 분석 없이, 이번 경선 결과를 여성후보의 역랑부족으로만 분석하는 안일함을 보였다.
'여심' '구애' '후끈'... 여성유권자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
성평등 이슈를 선거 의제로 견인하기 위한 시민사회, 여성단체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 부족했다. 후보들이 하나둘 출사표를 내던 지난 1월 21일 부산지역여성단체 협의체 총연대는 '오거돈 성비위 부산시장 보궐선거 벌써 잊었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정책, 성평등 부산을 위한 비전이 실종된 것을 지적했다. 이를 저녁 뉴스에서 전달한 건 부산MBC가 유일했고 KBS부산은 <뉴스광장>에서만 보도했다.
3월8일 부산여성단체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성평등 의제가 실종됐음을 지적했다. 이를 전달한 건 부산일보 <"절박한 성평등 의제, 정작 부산시장 보궐선거선 실종">(10면)가 유일했다. 또 3월26일 '오거돈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주관으로 진행된 김영춘·박형준 두 후보의 서약식 역시 KBS부산 <뉴스7>에서만 단신소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가 전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치러지는 만큼, 성평등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역언론은 1월 21일, 3월 8일, 3월 26일 기자회견 모두 단신으로 전달하거나 주요면이 아닌 면에 배치했다. 성평등 선거가 되길 바라는 시민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주목한 성평등 공약 중 하나는 '여성 부시장'이었다. 부산일보 <부산시장 보선 이후 '여성 부시장 시대' 열리나>(2/10), KNN <보선 이후 '여성 부시장' 시대 열리나>(3/21)는 김영춘·박형준 후보의 여성 부시장 임명 공약을 언급하며 '실현 가능성'을 점검했다. 다른 공약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가운데, 성평등 공약 중에서도 '여성 부시장' 실현 여부에 주목해 눈에 띄었다.
한편 여성유권자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도 있었다. 부산일보 <"여심 놓치면 승리도 놓쳐" 후보들 여심 구애전 후끈>(2/10, 5면)은 여야 후보의 여성 유권자 타깃 공약을 정리한 기사다. 여성 유권자의 표심은 '여심', 후보의 공약은 '구애', 후보 간 공약 경쟁은 '후끈'으로 정리한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여성유권자를 연애 대상으로 성애화한 제목 짓기는 지양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는 공약 이행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