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정조시절 건축된 만안교조선 후기 정조 시절 건축된 만안교는 정조대왕이 수원으로의 능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변함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가는 살아있는 역사 유적이다.
운민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만안교 가까이 접근해 보니 누구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고풍스러운 무지개 돌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그 다리의 연혁이 새겨진 듯한 비석이 우뚝 서있었다.
안양을 관통하는 안양천의 지류인 삼막천을 가로지르는 만안교는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축조한 다리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 화성, 융릉을 가려면 한강을 건너 노량진을 지나 사당, 과천을 통해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루트였지만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를 넘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금천구에 위치한 시흥행궁을 거쳐 안양으로 가는 경로를 택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조선의 인프라에서는 다리를 놓아서 건너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왕이 지나가는 길에는 그래도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았다가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행차가 끝나고 다시 철거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정조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안교라는 돌다리를 짓게 되었다.
만년 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처럼 만안교는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다리를 건너 왕래하고 있었다. 물론 원래 다리의 위치는 현재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400미터 떨어진 석수로의 교차점에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정조대왕도 이 다리를 통해 남쪽으로 향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조대왕의 겪었을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다리를 건너본다. 지금도 삼막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 근처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안양에서 기대도 못한 첫 만남을 가진 후 이 도시가 가진 내공과 매력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계곡을 따라 안양 예술공원으로 들어간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가에 자리 잡은 안양 예술공원은 여기가 안양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울창한 숲을 자랑하기에 평일에도 수많은 산객들이 여기를 방문한다. 예전에는 여기가 안양유원지라고 불렀다. 예전 서울 사람들도 안양을 몰라도 안양유원지는 알 만큼 이 유원지의 명성은 정말 대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