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 건설반대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렸다.
권우성
2.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다!"
집에서 하단까지, 하단에서 가덕도까지 들어가는 내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현수막들이 잔뜩 붙어있다. 부산에 이미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는 게 확정이지 않냐며 가볍게 되묻던 친구의 질문과 함께 그것들을 눈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가덕도 신공항을 짓기 위한 정치인들의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특별법안의 문제성', '기후위기시대 공항 건설의 부절적함' 등이 아니라 '가덕도 신공항의 확정' 혹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작된 정치인들의 가덕도신공항 표심'이었다. 액션 또한 '가덕도 내 작은 해프닝', '신공항 반대 측의 난장', '청년들의 치기'로 누군가에게 전달되거나, 어쩌면 우리의 서사가 누구의 입으로든 왜곡되어 "전해졌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해야할, 웃지 못할 상황이 올 것이다. 무엇이든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다." 부산시 홈페이지의 정보공개 란에 들어가보았다. 김해신공항 사업비 수준의 알짜 경제공항으로, 이미 충분한 수요가 확보된 사업이라 되어 있다. 지반침하부터 자연재해 모두 걱정할 필요 없으며, 조류와의 충돌도, 해상환경 변화도 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공항이라 한다. 부산시의 홈페이지 홍보대로 이상적인 공항이라면, 특별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덕도 인근의 낙동강 하구는 독특한 지형이다. 육지에서 하천을 타고 쓸려내려 온 모래가 바다의 밀물과 함께 작용하며 모래무덤을 이루면 식물의 뿌리가 그것을 잡아 안정시킨다. 사초, 버드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정착할 때가 되면 긴 주기로 큰 홍수가 나고 앞선 식생들이 대부분 사라지며 또다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다. 끊임없는 생태순환을 하며 한반도에 오는 태풍과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의 방패막이가 되고 철새 도래지가 된다. 뿐만 아니라 가덕도엔 장지뱀, 대구, 수달 등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물들과 고유종들이 산다. 산을 잘라 건물 10층 높이의 해안을 메꾼다는 말은 이 생태의 움직임을 인간이 막아버린다는 얘기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낙동강 하구의 혈을 막는 시한폭탄 혈전이 될 것이다. 인근 습지가 파괴되며 가덕도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대구 외 여러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 자잘하게 분포되어 있는 작은 섬들이 없어지면 땅의 조도(거칠기)가 심히 낮아져 태풍을 효율적으로 막아내지 못한다. 가덕도는 태풍의 길목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잦아지고 세어지는 태풍에 가덕신공항이 들어서면 과연 제대로 운용할 수나 있을까. 관광에만 편중되게 도시를 구성해 재해에 무척 취약한 부산의 피해 역시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김해공항만의 적자 수익으로 이미 수요 타당성이 확인된 사업이란 찬성 측 주장은 정말 확실한가?
2019년도 기준으로, 김해는 1000억 원 흑자의 공항이다. 하지만 인근 대구, 울산 등의 인근 공항은 모두 적자이다. 어떻게 막연히 부울경의 경제를 모두 커버할 것인가? 국내 흑자공항 4곳 중 한 곳인 인천공항공사는 앞으로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수요 회복에 최소 3~4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 예측했으며, 2023년 이후로 가능하다 전망했다.
이러한 코로나 시대에, 외해에 지어진 공항 하나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단 말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시 홈페이지엔 단지 7조의 예산만이 소요할 것이라 적혀있다. 이 7조는 국제선 활주로 하나만 지었을 때의 비용으로, 국내선 활주로, 교통인프라 외 여러 공항의 구색을 갖추는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찬성 측은 가덕도 신공항을 부울경 메가시티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수단으로, 수도권중심주의와 지역의 쇠퇴해가는 현 세태의 돌파구처럼 얘기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답이라고 어떻게 명쾌하게 얘기할 수 있나.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가 비전문가란 이유로, 말의 비약이 심할까봐, 찬성 측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지식의 부재에 끝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공항의 중심에 있는 가덕도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는 지속적으로 찾아보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뵈었던 해양 정화 활동가분은 나에게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서칭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같은 처지기에. 글을 쓸 때마다, 활동을 할 때마다 확신할 수 없는 주장에 나의 선명하지 않은 지식을 근거삼아 덧칠하는 것일까봐 몇 번이나 망설여진다.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언급이 나온지 16년째, 단순히 '신공항 건설 반대'의 문제로만 보기에 기후위기, 위장환경주의, 지역균형발전, 정치 내 위계 성폭력 인지 부재 등 여러 사회 맥락들이 한올한올 묻어 거대담론이 되어버린 것에 막막함을 느낀다. 앎의 깊이가 얕은 내가 느끼기에도 막막한 이것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논하나. 그나마의 신중함이던 예비타당성 조사마저도 면제하자고 외치며. 먹먹함을 느끼던 찰나 2월 5일 청년긴급기후행동에서 연대 제의가 들어왔다. 많은 것을 함께 나누고, 고립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자리를 마련해준 청년긴급기후행동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3.
우리는 가덕도에 먼저 들어가 집회 상황을 살펴볼 수색대팀, 강서구의 작은 공원에서 액션에 쓰일 현수막, 피켓을 만드는 팀으로 나누어 작업했다. 대항전망대의 집회상황을 지켜본 청과 혁이 경호 경찰의 규모, 분위기, 집회장소의 특징 등을 전했고, 후에 피켓을 만들던 팀까지 모두 가덕도에 도착했다.
집회 인근 카페에 모여 진입 사인과 구호, 각자 행동 지령을 의논하고, 조를 나누어 전망대로 걸어가는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던지. 전망대엔 위아래 모두 파란 옷을 짜맞춰 입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기자들, 경찰들,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그들의 부산 갈매기단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우리가 재전유할 수 있길 바라며,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에, '멸종행' 종이 비행기를 옷 안 몰래 품고 한참을 어슬렁거린다. 묘한 경계들이 느껴진다.
"에…… 이제 현수막 앞에 모두 서주십시오. 종이 비행기 들고 사진 찍고 간단히 연설문 읽고 집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혁이 마이크를 듬과 동시에 진입 사인이 떨어졌다.
"예, 반갑습니다. 의원님들께서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는 발언만을 계속 해주셔서 이제부터 반대 토론회를 잠깐이라도 해보고자 합니다. 저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이 정치인들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을 생존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후위기 시대에 토목 세력과 야합하는 이런 정치를 이젠 지켜볼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면, 기후위기에 실제로 대응하기 위한다면 신공항특별법은 지금 당장 철회되어야 마땅합니다!"
피켓을 들고 모두 현수막 앞에 뛰어드는 순간, 한 아저씨가 따라와 장을 밀고 끌었다. 장은 많이 놀란 듯보였다. 정신없이 아저씨를 함께 밀었다. 희와 나에게 오는 시민들 및 기자들의 삿대질과 비하발언, 욕설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나에게 정말로 치욕스러웠던 건, 이제 건질 만한 거 다 건졌으니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만 하겠다는 발언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민주당 정치인들이었다. 우리가 난입하자마자 짜놓은 듯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켓을 들고 뒤를 보며 외쳤다.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십시오!"
"목청 좋다, 이 새끼야!"
"의원님,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순식간에 목소리들이 혼잡하게 터져나온다.
"너네 부모님 누구고? 느그 이러는 거 아나?"
"가덕도 신공항 반대! 우리는 살고싶다!"
가덕도신공항 반대를 외치는 빈과 옥, 꿋꿋이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혁, 해산명령을 하는 경찰, 발언을 하고 싶으면 예의를 지키고 사과부터 하라는 고조된 누군가의 목소리, 현수막 앞에서 또박또박 발언문을 읽는 희, 특별법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 것이 뭐가 문제냐 중얼거리는 민주당 의원들의 투덜거림. 단 한 마디도, 특별법 정책에 대한 납득 가는 설득과 제대로된 답변은 없었다.
작은 대항전망대에서 벌인 액션이 그렇게나 괘씸했다면,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덕도 특별법을 조속히 추진한 자신들부터 돌아보아야하지 않는가. 차라리 우리를 설득시키길 바랐다. 낯선 목소리가 단지 무례함이 되고, 이질감은 위화감에서 그치지 못한 채 곧 위압감이 되는 사회가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열린 세상이 될 수 있을까.
* 탄소중립 :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산림 등), 제거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이 0(Zero)가 되는 개념.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으로, 이에 탄소 중립을 '넷-제로(Net-Zero)'라 부른다.
4.
"난 사실 깜짝 놀랐어. 자기들끼리 파란 옷 입고 '부산갈매기, 가즈아~!'하는데 정치깡패들인 줄 알았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구호를 외치고 해산한 뒤, 인근 카페에서 다시 짐을 찾고 잠깐 숨을 돌리던 장의 말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한껏 답답했던 마음에 바다 전경으로 눈을 돌리자 그제야 어깨가 풀어졌다. 찰나의 휴식 후, 각자 액션 소감과 앞으로의 연대 방향성 등을 논의했다.
부산과 서울의 액션 느낌이 매우 다르다는 점, 이 액션이 묻히지 않도록 후속 조치가 더 중요해 보인다는 점, 등등을 공유하며 우린 다시 한 번 대항 전망대로 갔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금빛 가덕 바다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며 뭉클해진다. 진작에 와볼걸. 전망대의 현수막들을 차근차근 둘러본다.
'가덕공항 고마해라-! 가덕주민 신물난다!' '가덕도 신공항 대항어민 다 죽는다!'
가덕도의 모든 주민들이 신공항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다수'를 위해, ' 대의'를 위해 소수와 지역주민들의 입을 막고 소리없이 희생시킬까. 현재 부산시장 후보들은 가덕 신공항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꿈꾼다고 얘기한다. '지역차별'로 인한 서러운 경기침체를 공항으로 해결될 것이라 외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이슈가 뜨며 전체 주민들 수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200명에서 한두달 만에 470명이 되었다고 한다. 대항마을을 비롯해 가덕도 곳곳에서는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조립식 건물공사가 한창이다. 신공항 토건 건설의 민낯이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새로운 도약이란 토건 개발 아래에 케케 묵고 음습한 성장 관성들만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