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수원화성의 전경조선 후기 정조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인 수원의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축조 상황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완벽히 복원을 하였다.
운민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또는 문화재가 있다. 보통 그 나라의 홍보영상을 만들 때, 예를 들면 인도의 타지마할이라던가 프랑스의 에펠탑의 풍경은 빠질 수가 없다.
그럼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일어난다. 삼국시대부터 경기도가 있는 한강유역은 치열한 영역 다툼의 현장이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세계문화유산만 해도 광주, 성남의 남한산성, 경기도 각지에 뻗어있는 조선왕릉, 수원 화성까지 3개나 있다.
그중 수원 화성은 단연코 경기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아닐까 싶다. 화성은 동, 서양 성곽의 장점과 조선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아름답게 건설된 신도시의 원조격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별개의 도시로 분리되어있지만 원래 수원과 화성은 같은 도시라 할 수 있는데, 수원부의 읍치(고을 소재지)가 화성시 화산동 일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현재의 융건릉)을 조성하면서 기존 읍치를 밀어버리고 이곳 수원 화성에 새롭게 시가지를 만들면서 수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수원 화성(華城)의 명칭은 지금은 화성시에 위치한 화산(華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조가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전 도시들과 달리 철저한 계획 속에서 건설했고, 그 당시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대 천재인 정약용이 화성을 건설하기 위해 거중기를 발명했으며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와 기중가설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이었던 수원화성 수축에 기여했다.
수원화성의 외벽은 벽돌로 되어 있지만 내벽은 자연의 지세를 활용했다. 이 점을 들어 흔히들 '동양 성곽 건축의 백미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수원 화성은 동, 서양 성곽의 장점을 두루 보여주는 독특한 형태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물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축조 상황을 기록한 것이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 의궤>이 남아있었다. 그 덕분에 팔달문 부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원형에 맞게 복원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보면 진가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수원시의 중심에 위치한 수원 화성은 길이 5.7km 정도의 둘레길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곽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중국이나 유럽의 성곽이 정사각형 혹은 직사각형 원형으로 단순하게 이어져 있는데 반해 화성은 산자락, 평지, 물을 건너가며 성벽이 이어졌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고, 체력 요건이나 시간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즐겨 볼 수 있다. 걷거나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팔달문에서 시작해서 다시 원점으로 희귀하는 코스를 택해 3시간이면 한 바퀴를 도는 데 넉넉하다.
중간에 팔달산이라는 산이 있어 등산을 하기 부담스러우면 장안문에서 시작해 연무대까지 천천히 걸어봐도 화성의 진가를 알기에 충분하다. 걷는 것조차도 싫어해도 상관없다. 화성 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편안하게 관람하는 방법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