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구렁이 진달래 꽃 속에 숨은 구렁이
오창경
구렁이는 모델료를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진달래나무 사이에서 곡예를 하듯 쉴 새 없이 움직여주었다. 진달래 나뭇가지 색 보호색으로 감싼 구렁이가 꽃잎이 지고 수술만 남은 곳에 머리를 걸치니 그대로 꽃의 모습이었다. 구렁이가 꽃인지 꽃이 구렁인지 모를 경지를 보여주었다. 진달래 꽃 뒤에 숨바꼭질을 하듯 머리를 숨기기도 했다. 구렁이는 가냘픈 진달래 나뭇가지 사이에서 유영을 하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몸매와 검은 진주가 콕 박힌 것 같은 눈망울에 둥그스름한 머리통을 지닌 구렁이를 자세히 보고, 오랫동안 보았더니 무서움도 사라졌다. 그 징그럽던 감정도 무뎌졌다. 기다란 몸이 꽃잎과 함께 춤을 추듯 자유롭게 꿈틀거리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머리가 세모꼴인 독사에 비해서 둥그스름한 머리통인 구렁이는 사나와 보이지 않고 유순해 보였다. 무조건 피하기만 했던 뱀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긴 머리의 여자는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뱀의 화관 썼다.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몽환적인 눈빛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뱀과 꽃과 여자를 시그니처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가 투명한 상자에 뱀들을 잡아다 놓고 꿈틀거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했던 까닭을 알 것 같았다.
햇볕에 반짝이는 강렬하고 강한 황금빛 생명력이 우리를 압도했다. 여자들이 뱀과 동의어인 두려움을 잊을 만큼 진달래 꽃 속의 구렁이의 모습은 농염하기까지 했다. 발밑에서 기어가는 모습으로 만났더라면 두려움만 남긴 존재가 되었을 뱀이었다. 진달래꽃 나무를 휘감고 나타난 구렁이 한 마리의 아우라에 우리는 빠져버렸다.
"야아! 뱀도 꽃 속에 앉아 있으니 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황금빛 꽃이요. 어쩌면 뱀의 피부가 혐오스럽지도 않고 찬란한 빛이네요."
급기야 햇볕에 반사되어서 반짝이는 뱀의 피부에 감탄을 하는 일행도 나왔다.
"자연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이런 장면을 찍었어야 하는데 아깝네요."
동영상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일행들의 슬기롭지 않은 스마트폰 사용법을 자책하는 소리였다.
"이 사진의 제목은 '구렁이도 꽃구경 나왔슈'에요."
"그것도 맞네요. 꽃구경을 하는 뱀이라니... 구렁이가 우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달래 산행에서 우연치 않게 만난 황금빛 구렁이 한 마리가 일행들의 잠자던 예술 혼을 바닥에서 끌어올리고 있었다. 피하기만 했던 뱀 한 마리가 우리의 감상을 풍요롭게 해준 셈이었다. 우리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뱀을 만난 행운아들이었다.
뱀과 꽃과 여자들이 다함께 있는 공간에 우리들이 있었다. 천 화백이 추구했던 생생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시간을 진달래 산행에서 만났다. 우리들의 유한한 생과 진달래꽃 같은 사랑 타령을 황금빛 구렁이 한 마리에게 플렉스 해버린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