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롭지 않은 김밥 재료 꼭 필요한 것만. 계란부침, 햄, 맛살, 씻은 김치. 이 이상은 무리다.
조영지
아삭아삭 씹히는 단무지의 상큼함과 맛살과 햄의 조미된 맛, 이때 계란까지 합세해 고소함이 느껴지는 순간 참기름의 미끈한 향이 사르르 올라오면 행복도 함께 밀려온다. 이때 시원한 탄산음료 한 잔은 화룡점정!
특히 봄날 야외에서 먹는 김밥은 천상의 맛이다. 등은 뜨뜻해 오지, 한참 바깥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달래고 구슬리느라 진 뺄 필요도 없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따뜻하고 몽글한 공기의 감촉... 야외에서 먹는 진정한 외식의 기쁨. 나는 이것이야말로 바로 '봄의 맛'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 맛에 빠져 나는 봄이 되면 쉬지 않고 김밥을 말아댔다. 내가 김밥을 말면 소풍행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도 은근 김밥 마는 날을 기다렸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댔나? 거기에 하나 더! 김밥을 만드는 일도 숨길 수 없다.
고슬고슬 갓 지은 밥에 시골표 찐 참기름을 아낌 없이 후루룩 한두바퀴 둘러 섞고 있으면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도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김밥 마는 날임을 짐작하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엄마, 김밥 말고 있을 줄 알았어" 하고. 개코 인증.
소풍은 혼자 가면 재미 없으니까 친구를 초빙하기도 한다. 넉넉하게 싼 김밥을 들고 도란도란 나눠먹으면 꼭 차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소풍 기분 제대로다. 김밥도 한 철이다. 여름이 되면 금세 쉬고, 가을이 되면 일교차에 움츠린 채로 먹다 체할 수도 있다. 겨울은 바깥 나들이 자체가 힘들다. 그러니 부지런히 김밥을 말아 소풍을 가야한다. 짧은 봄을 아낌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봄이 왔다. 김밥이 말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소풍은 꿈도 못꾼다. 아이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생각난 김에 오늘은 김밥을 말아볼까?
김밥발 없이도 도르르 잘 마는 내가 신기하다. 김밥 끝부분이 잘 안 달라 붙을 땐 물을 살짝 묻혀 굴려주면 찰싹 붙는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으려나. 김밥은 칼이 전부라고 누가 그랬더라? 아무리 잘 만 김밥도 무딘 칼로는 망한다. 쓱쓱 칼 가는 기계에 넣었다 뺀 뒤 김밥을 숭숭 자른다.
소풍 도시락에 담아 실내에서 먹는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