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에서 바라본 구래동의 모습한강신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구래동의 호수공원에서는 사시사철 언제나 산책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촬영.
운민
김포는 언제부터 이름이 김포(金浦)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을까? 김포의 포가 항구의 포임을 봐서 한강과 예전부터 큰 관련이 있음직하고, 그 유래는 1145년 고려 인종 때 발간된,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로 평가되고 있는 <삼국사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포 현은 본디 고구려의 검포현(黔浦縣)인데 경덕왕이 고친 이름(金浦縣)으로 지금도 그대로 쓴다' 하였고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김포 현은 본래 고구려의 검포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장제군(長提縣: 부천) 속현으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보이니 그 역사가 생각보다 유구함을 알게 된다.
항구의 유구한 역사는 물론 김포 하면 쌀로 지금까지 유명하지 않은가? 한강의 풍족한 수량과 거기에서 퇴적된 옥토로 인해 천혜의 부촌이 되었다. 하성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밀 다리 쌀(자광미)은 밥맛이 좋고 미질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미가 될 정도로 김포쌀은 최상의 미질을 자랑하고 있다.
도시 성장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빠른 김포지만 아직도 주요 마트에 가면 김포금쌀이 코너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가격도 조금 더 비싼 값을 자랑하고, 심지어 찰기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편이다. 한강신도시를 지나 사우동으로 가기 전 아파트가 듬성듬성 이어진 걸포, 북변동을 지나는데 갑자기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으로 올라가면 김포시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