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발표한 물티슈 관련 여론조사 그래픽 자료.
경기도청 누리집
나는 경기도의 조사결과를 지인이 올린 페이스북 글을 통해 알게 됐는데, 글 밑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나처럼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런..."
"헉! 진짜요?"
"앗 새롭게 배웁니다."
"모르고 살았는데 중요한 것을 알았네요."
"정말 큰일입니다. 물티슈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아기 키우며 정말 물티슈를 많이 쓰는데 플라스틱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됐네요."
"어머 물티슈를 자주 사용했는데 자제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찾아봤더니 물티슈의 원단으로 면이나 실크 같은 천연섬유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주로 재생섬유인 레이온과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PET)를 혼방해 만든다. 저렴한 가격을 맞추면서도 잘 찢어지지 않고 수분을 함유해야 하기 때문에 합성섬유의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관련 보도가 꽤 오래전부터 나왔고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둔감했을까. 미디어의 문제? 행정? 환경교육? 그런데 나는 시중에 판매되는 물티슈를 둘러보다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무도 자사제품의 원단재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원단 재질 표시가 없다
지난 24일 오후 2시경 나는 집근처 편의점 두 곳과 중대형 마트 두 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물티슈들의 겉포장 상품설명을 살펴봤다. 모두 20종류(중복될 수 있음)의 물티슈 제품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14종류는 자사 제품의 원단재질에 대해 전혀 설명이 없었다. 물티슈 이름이 '실키'로 시작해 마치 실크(비단) 소재일 듯한 기대감이 드는 제품도 있었고, '의약외품' 허가를 받았다며 위생성을 강조한 제품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원단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편의점 A : 6종 중 5종 원단재질 설명없음.
편의점 B : 3종 중 2종 전혀 설명없음.
중대형마트 C : 8종 중 7종 전혀 설명없음.
중대형마트 D : 3종 모두 설명은 있음.
주로 아기 물티슈를 갖다놓은 D마트의 경우 3종류의 물티슈 모두 원단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었다.
제품 A : "천연펄프 함유"
제품 B : "천연펄프가 함유된..."
제품 C : "순면 감촉의 원단"
천연펄프가 얼마나 함유됐고 나머지 원단은 어떤 재질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제품 C는 유아용 물티슈로 무려 15종의 화학물질을 뺐다고 했지만 원단에 대해서는 '순면 감촉의 원단'이 전부였다. 순면으로 만들었다는 건지 순면처럼 부드러운 다른 재질이라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른 제품들도 부드러움이나 짱짱함이나 깨끗이 닦인다는 이용자 중심의 편의성만 강조할 뿐 원단의 재질을 명시하지 않았다.
물티슈 A : "짱짱하고 도톰한 재질"
물티슈 B : "순면감촉의 원단"
물티슈 C : "부드럽고 도톰해 깨끗이 닦이는 원단"
물티슈 D : "천연펄프 함유"
물티슈 E : "천연펄프가 함유된"
물티슈 F : "순면감촉의 원단"
성분은 '친환경' 강조... 원단은?
20종류 모두 원단재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당연히 폴리에스테르의 '폴'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 성분에 대한 설명은 과할 정도로 많았다. 유해 화학물질을 이러이렇게 뺐다거나, 정제수를 어디 것으로 썼다거나, 이러저러한 천연물질을 넣었다는 등. 온라인 쇼핑몰도 비슷했다. 온라인 구매의 특성을 감안했는지 편의점보다는 많은 정보가 노출됐지만 원단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았다.
온라인 제품 A : "천연펄프 함유" (얼마나?)
온라인 제품 B : "엠보싱 레이온 50%" (나머지는?)
온라인 제품 C : "최고급 소프라 원단" (생분해 여부는?)
역시 폴리에스테르의 '폴'자도, 생분해 여부도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 성분 안전성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히 언급되고 있었다.
온라인 제품 A : 6단계 세정수, 유해물질 테스트 완료, 페퍼민트, 연꽃...
온라인 제품 B : 유해물질 불검출, 독일 더마테스트 엑셀런트 등급, 올리브나무...
온라인 제품 C : 항균력 99.9%, 의약외품 제96호...
업체들이 이처럼 '성분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제기돼온 안전성 논란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물을 적신 상태로 최소 1개월 이상 보존한다는 물티슈의 아이디어 자체가 화학물질을 부른다. 물은 세균증식을 돕기 때문에 행주에 물을 적시면 하루도 안 돼 냄새가 난다. 그러나 물티슈가 한 달이 지나도 멀쩡하다면 세균을 죽이는 살균제나 보존제, 방부제 같은 화학물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학물질을 안 쓰면 세균이 증식해서 더 위험하기에, 물티슈에는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이 들어간다. 어떤 물질을 어느 정도 쓰냐의 차이가 있을 뿐.
2011년 부패 방지용 보존제가 일부 제품에서 검출됐고 2014년 일부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원인이 됐던 PGH, PHMG, CMIT, MIT 등의 화학물질이 검출되면서 난리가 났다. 그러자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그동안 공산품으로 분류되던 영유아용 물티슈를 화장품으로 분류해 화학물질들에 대해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시켜왔다. 업체 입장에서는 친환경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뉴욕시 "화장실용 물티슈도 변기에 버리면 안된다"
앞으로는 '플라스틱 여부'도 주목받게 되지 않을까. 이미 뉴욕이나 런던 등 대도시에서는 물티슈 등이 하수구 막힘의 원인물질이 되어 골머리를 썩고 있다.
팻버그. 기름을 뜻하는 팻(fat)과 빙산을 뜻하는 아이스버그(iceberg)의 합성어인데, 싱크대를 통해 하수구로 흘러내려온 기름성분이 무심코 변기에 버린 썩지않는 물티슈 등과 결합해 거대한 빙산처럼 단단한 덩어리가 돼 하수구를 막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팻버그를 제거하려면 몇 사람이 하수구 안에 들어가 악취와 싸우면서 돌을 뚫는 드릴 등을 동원해 장시간 작업해야 한다.
영국 수자원 공사는 매년 처리하는 30만 건의 하수구막힘 공사 중 93%가 물티슈와 관련 있으며, 하수구 막힘을 뚫는 데 매년 1억 파운드(우리 돈 약 1568억 원)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시 환경보호국은 200만 달러의 지하철 광고캠페인을 벌여 '화장실용으로 표기된 물티슈도 변기에 버려서는 안된다'고 홍보했다. 광고와 달리 화장실용 물티슈도 하수관에서 깨끗하게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하수시스템에 손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