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에 위치한 식료품 점에서 고객들이 휴대폰 불빛을 이용하여 식품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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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골프를 칠 수 있는 곳, 미국 남부 텍사스주에 '겨울폭풍'이 휘몰아쳤다. 지난 15일에는 영하 18도였다. 곳곳이 얼어붙고 결빙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속출했다. 고속도로에선 133중 추돌사고가 났고 공항 3곳이 폐쇄돼 항공기 3천 대의 발이 묶였다. 눈이 시카고보다 더 많이 왔다. 사람들은 제설장비와 식량, 휘발유를 사려고 줄을 섰다.
너도나도 전열기를 꺼내 전기 플러그를 꽂았다. 그러자 블랙아웃, 전기가 나갔다. 휴스턴과 댈러스 같은 대도시를 포함해 3백~4백만 가구가 정전사태를 겪었다. 밤새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낮에는 땔감으로 쓸 통나무를 줍기 시작했다. 자동차 히터열로 집안을 덥히려 했던 일가족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2명이 숨지기도 했다. 병원의 냉동장치가 멈춰 극저온상태로 보관되던 코로나 백신 수천 개가 부패하기 직전이다.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이 아니다. 최근 미국 중남부를 얼어붙게 한 기상이변의 실화다. 북극 한파가 텍사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아칸소 등 중남부까지 밀려 내려오다 온화한 공기와 만나며 겨울폭풍을 일으켰다. 30년 만의 한파라고 한다. 폭풍은 물러가고 기온은 영상으로 회복했지만, 정전의 후유증은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때아닌 '신재생에너지' 논란이 벌어졌다.
텍사스 미스터리
다른 곳도 아닌 '텍사스'였기에 정전의 원인을 두고 논란이 커졌다. 텍사스는 가스면 가스, 풍력이면 풍력, 원자력까지 풍부한 미국의 '에너지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매장량이 미국 최대 규모다.
사막의 거센 바람이 일정하게 불어 풍력발전량도 최고, 더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연구시설들이 있고, 사막에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 그런 텍사스 발전용량의 40%가 무너졌다. 겨울폭풍은 텍사스에만 불어닥친 게 아닌데 16일 기준으로 미국 내 정전 가구의 78.1%가 텍사스에 몰렸다. 왜일까. 미스터리가 있는 곳에 뜬 소문이 돌았다.
공화당 정치인들과 폭스뉴스 등 보수 언론은 풍력터빈이 얼어붙는 등 신재생에너지가 제역할을 못 해 이번 정전사태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출신 텍사스 주지사의 언론 인터뷰가 시발점이었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17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작동 안된다"며 "화석연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자 보수논객들은 '신재생에너지만 믿다가 모든 미국인이 얼어 죽을 수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선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경고멘트를 날렸다.
덩달아 국내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 비판에 나섰다. <매일경제>는 '텍사스 반도체 공장 셧다운으로 불신 커진 풍력발전의 민낯'이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고, <문화일보>는 '탈원전 어젠다 허구성 거듭 보여준 텍사스 정전 사태'라는 사설을, <조선일보>는 데스크칼럼으로 '텍사스 정전사태를 보라'고 썼다. 원자력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늘려온 텍사스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똑똑이 봐봤다. 어쨌든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우리 미래를 위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는 것 자체는 좋은 일 아닌가. 그렇게 텍사스 정전사태를 들여다봤더니 다른 게 보였다. 핵심은 신재생에너지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풍력은 핵심원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