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일흔아홉 살. 살인적인 노동자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1차 희망버스. 경찰과 용역의 저지선을 뚫고 공장 안에 진입, 폐기물처리 차량 위에 올라 연설하는 백기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1929-2018),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 원로 평화운동가 문정현 신부가 함께 했다.
노순택
2012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을 10회 진행했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걷기 행사도 벌였다. 2013년에는 쌍용차 등 민주노총 67개 투쟁사업장 집회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나메기 지방 순회 홍보활동을 하면서 각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문화투쟁의 하나로 '우리 시대의 저항선언문'을 발표했다. 죽음을 넘어서는 민중의 쇳소리 '백기완의 비나리 낭송의 밤'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한국지엠(GM)지부로부터 승용차를 기증받기도 했다.
여든 살이 넘어서도 백발의 투사는 거리에서 역사의 진보를 외쳤다. 백기완에게 진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힘겹게 진보해 온 민중의 역사에서 희망을 찾았다.
"진보는 아리아리라고 해. (탁자를 치며) 아리아리랑~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거야. 제국주의나 악덕 재벌들이 깔아놓은 판을 깨자는 게 불림이야. 축구를 하면서도 '파이팅' 그러는데, 아니 시합하다 말고 누굴 죽여? 그럴 때에 '아리아리~' 그러자는 거야.
왜정 때 이런 불림이 있었어. '소나무 장작은 왜장작~' 좋은 장작은 왜놈들이 다 가져갔거든. 이때 춤꾼이 춤판에 뛰어들면서 왜놈 골통을 까는 것처럼 외치는 게 불림이야. 주어진 판을 깨고 우리 판을 만들자는 거지. 제주도에서 물질하던 아낙들이 하던 불림도 있어. '이어차~ 쳐라쳐라~' 아낙네들이 2천리 이상 바다로 나가거든. 배에다 고추장, 된장 싣고 나가는 거야. 파도를 우리말로 몰개라고 하는데 몰개를 뚫고 가면서 외치는 거지. 파도여 물러가라~ 이게 조선의 여인이야.
마지막으로 '질라라비 훨훨~', 질라라비는 닭의 원래 이름이야. 닭은 2만년동안 사람하고 살면서 자기 집을 짓는 것, 자기 입으로 먹이를 구하는 것을 잊어 버렸어.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지. 그래서 알도 낳고 늦잠 자는 아저씨를 깨워줬는데, 사돈에 팔촌이 왔다고 자기 모가지를 비틀어서 튀기려거든. 이에 화가 나서 오라를 풀고 날개를 쳐 날아가 버렸어. 울을 박차고 자기 해방의 경지로 날아가는 것을 '질라라비 훨훨~' 이라고 해. 세계 독점자본이 깔아놓은 판을 깨자는 것을 불림이라고 해."
2014년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 '부정당선 박근혜 안돼!' 집회에 참석했다. 유성기업 고공농성자 격려를 위해 '희망버스'를 제안했고 '세월호 학살 만민공동회' 등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민주노총 총궐기대회 때에는 "거짓을 몰아치는 양심의 바람 운동을 일으키자"고 연설해 호응을 이끌었다. '나는 왜 따끔한 한 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를 주제로 민중사상 특강을 한 뒤 참여자들과 밤늦게 프레스센터 광고탑까지 거리행진해서 c&m 통신비정규직 고공농성자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세월호 1주기 집회에 참석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서다 사망했던 민중총궐기 대회 때에도 지팡이를 든 채 선두에 있었다. 2016년에는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건립을 위해 '두 어른 전시회'를 열었고, 작품 판매 수익금 전액인 2억여 원을 꿀잠에 기부했다. 백기완은 이때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노나메기,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선다', '산자여 따르라', '천년을 실패한 도둑',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 아 그 빛처럼' 등의 글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