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를 늘 챙겨야했던 비염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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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나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성 비염 질환을 앓으며 살아왔다. 비염은 공부하는 데에도 지장을 주었다. 물론 S대에 가지 못한 이유는 비염 때문은 아니다.
비염 때문에 휴대전화만큼이나 두루마리 휴지를 자주 만지작거리며 살아왔다. 사춘기 시절에는 한창 멋 부릴 시기였는데 훌쩍훌쩍거리며 휴지로 콧물을 닦는 스스로가 싫었다. '간지' 나는 스타일에 휴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어딜 가든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되었는데 그 습관은 온전히 비염 때문이다. 화장지나 물티슈, 손수건을 항상 챙겨 다녔다. 주머니에 넣어도 되지 않느냐고? 주머니에 물건을 넣어 불룩불룩 튀어나온 스타일이 싫었다. 화장지와 함께 간지도 잊지 않고 늘 챙겼다.
가끔 깜빡하는 날이 있다. 하필이면 그런 날 비염 증상이 심하다. 콧물이 내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묽고 빠르게 흘러 당황스러운 때가 많았다. '스르르'가 아니라 '슥' 흐르면 참사를 막을 수 없다. 몸이 이렇다 보니 환절기가 찾아오면 무서웠다. 먼지가 많은 장소를 싫어했고 코가 예민하니까 담배 연기가 자욱한 PC방도 싫었다.
게다가 몸이 피곤하거나 환절기가 되면 비염 때문에 코가 양쪽 다 막혀버리기도 했는데, 이런 날 밤에는 침대에 눕기가 무서웠다. 입으로 숨을 쉬다가도 숨이 멎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지금도 그 끔찍한 순간은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채식 이후 환절기가 무섭지 않다.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윤리적인 이유였다. 채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채식이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채식을 4개월 정도 하니 겨울에서 봄으로 이동하는 환절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환절기와 늘 함께 찾아왔던 비염 증상은 오지 않았다. 이번 환절기는 운 좋게 넘어간다고 안도했다.
두 번째 환절기를 맞이했다. 바로 추석이었다. 채식 이전에, 비염 증상은 연중 추석 때가 피크였다. 콧물도 주르륵 흘리고 하루 종일 훌쩍거리며 휴지로 코를 풀었다. 정말 심할 땐 눈이 가려워서 충혈되고 퉁퉁 부어 눈물도 흘렸다.
추석 때 비염 증상이 심해졌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추석 전후가 보통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이고, 두 번째 이유는 추석 때가 되면 고향에 가니까 잠자리도 바뀌고 생활 환경도 바뀌기 때문이다.
약을 평소에 잘 먹지 않는데 추석 때면 지르텍(항히스타민제)을 꼭 챙겨 먹었다. 지르텍을 복용하기 전에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몽롱했고 복용 후에는 콧물과 눈물은 멈췄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2020년 10월, 채식을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1개월. 추석에는 비염으로 딱 하루 고생했다. 강도도 이전보다 훨씬 약했고 고생하는 기간도 훨씬 줄어들었다. 매년 찾던 지르텍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다만, 추측할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