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8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단체행동 집회를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 당사로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한때 '떼법'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를 두고 보수 언론과 정권이 합작해 만든 신조어다. 떼를 쓴다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법치가 무너진다는 간단명료한 논리였고, 여론도 긍정적으로 화답하며 강경 진압을 부추겼다.
'떼법'에 대한 여론의 불신은 노조의 힘을 급격히 약화시켰다. 노조는 '떼쓰는 집단'으로 낙인찍혔고, 쟁의 행위는 헌법적 권리임에도 여론의 외면 속에 번번이 실패했다. 힘을 잃은 노조는 조합원 수의 감소와 노령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힘이 더욱 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러나 '떼법'은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았다. 노조엔 강경 진압을 일삼던 정부가 의대생 앞에선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이다. 진보 정권이라고 해서 과거 보수 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떼법'조차 언뜻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결정은 사실상 정부의 '항복 선언'이다. 그러잖아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의대생들의 특권 의식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학교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왜 각자의 흥미와 적성을 불문하고 오매불망 의대 진학만을 꿈꾸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로지 의대
삼척동자도 아는 학벌 서열, 'SKY, 서성한, 중경외시'. 서울 소재 상위 10개 대학으로 불리는 명문대의 첫 글자다. 아이들의 학벌 놀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만, 근래 들어 맨 앞자리에 추가된 대학이 있다. 바로 대학의 이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의대'가 그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지방의 이름 없는 사립대조차 '의대'라면 SKY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SKY 다닌다고 으스댈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년이지만, '의대'는 평생 간다는 게 이유다. 명문대 졸업했다고 취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엇비슷한 성적이면 '의대'가 정답이라는 거다.
얼마 전 대학별 수시모집 합격자들의 연쇄 이동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SKY 최초 합격자 중에 무려 2841명이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31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조사한 결과를 보도한 이
매체는, 서울대 수시 미등록과 관련 '예년과 다름없는 현상이다. 서울대 공대, 자연대, 치의학과 등 자연계열의 경우 타대학 의대와 중복합격으로 인해 서울대 등록을 포기하는 수험생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추가 합격이 많이 나온다'라고 분석했다.
사실 수험생들이 두 곳 이상 대학에 합격한 경우가 많아 미등록 자체가 놀라운 건 아니다. 다만, 수시모집 합격자들의 이동 '방향'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존한 학벌 구조에다 맹목적인 의대 선호라는 씁쓸한 교육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의 입시 경향이 지방 사립대는 지방 국립대로, 지방대는 '인-서울' 대학으로, 연고대는 서울대로, 그리고 서울대는 의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징후는 뚜렸하다. 곧, 연쇄 이동의 종착역은 의대다.
오로지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 삼수를 불사하는 아이들 또한 적지 않다. 의대가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이유가 없다고 선선히 말하는 고1도 여럿이다. 졸업한 제자 중에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이과 통합의 시대 요즘 아이들은 문과도 의대를 목표로 공부한다. 의대 선호에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도 없다.
정부의 '항복'을 받아낸 그들의 위세를 다시금 확인한 이상, 아이들에게 의대 선호는 차라리 본능이다. 의대 정원은 극소수이며, 그 수가 제한될수록 그들의 특권 의식은 더욱 강화된다. 물론, 부유층의 자녀가 의대 진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건 이미 여러 통계로도 확인된 바다.
"검사와 의사에게 대한민국은 천국이다."
한 지인이 내린 결론이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가 사법고시로 획득한 검찰 권력 앞에 쩔쩔매고, 급기야 의대생들의 몽니에도 무릎을 꿇었다며 어이없어했다. 명색이 '촛불 시민'에게 빚진 정부가 도리어 기득권에 주눅이 들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지난해 '인국공 사태'를 겪은 뒤 형평성과 공정성은 모든 개혁의 전제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일괄 전환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조차 멈춰 세울 만큼 여론의 향배를 결정하는 강력한 이슈였다. 그 '절대 반지'를 의대생들이 순식간에 무력화시켜버린 것이다.
차라리 그들의 도움 없이는 코로나 극복이 힘들다고 고백하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등의 얼토당토않은 해명은 온 국민에게 허탈감과 열패감을 안기고 분노만 자아낼 뿐이다. 단언컨대 정부의 '항복 선언'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끼칠 악영향은 감염병의 위기 못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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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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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제자의 예언 적중... 저는 철부지 교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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