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MAMA' 압도방탄소년단이 6일 오후 열린 '2020 MAMA(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J ENM
올해 중2인 딸아이는 방탄소년단(아래 방탄)의 팬이다. 그맘때는 연예인에 대한 기호가 변덕스러운 게 보통인데, 지금껏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은 충성스러운 '방탄교 신자'다. 전 세계 수천만 명 중의 한 사람일 뿐이지만, 50줄에 들어선 아빠의 눈에는 유난스러운 데가 있다.
방이 온통 방탄으로 도배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문에는 대형 브로마이드가 방의 주인인 양 걸려있고, 옷장과 책상, 침대에도 온갖 '방탄 굿즈(Goods)'가 넘쳐난다. 방탄과 관련되지 않은 물건은 그 방에 들어갈 수 없는, 흡사 '신성불가침'의 공간 같다.
중학생이 된 뒤 처음 손에 쥔 스마트폰도, 최근 원격수업을 위해 마련한 태블릿 피시도, 그에겐 '접신'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방탄이 나오는 방송이라면 무조건 실시간으로 챙겨보고, 멤버의 일상을 일일이 스크랩한다. 아빠의 생일은 깜빡해도, 그들의 생일은 놓치는 법이 없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꿰고 있다. 심지어 방탄의 팬클럽인 전 세계 '아미'들의 근황조차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듯 방탄에 목매단 아이들이 그의 학급에만 십수 명이라고 하니, 종교 말곤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릴 적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은 잠시 심하게 앓는 홍역 같은 것, 철이 들고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 시나브로 무뎌질 거라고 봤다.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하지만, 내 중고등학교 시절도 그랬을 테니 말이다.
소피 마르소와 브루크 쉴즈.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A4 크기의 사진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사용하며 종일 그들과 만났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기도 했고, 참고서 등을 사면 사은품으로 끼워주곤 했다. 당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용품'이었다.
가슴앓이는 반짝 유행처럼 순간이었고, '현타(현실자각 타임의 준말)'는 서둘러 찾아왔다. 그들에 대한 팬심은 사춘기를 판별하는 기준이 됐다. 여전히 책받침 속 사진에 애면글면하는 친구가 있다면, 넌 대체 언제 철들 거냐며 조롱하곤 했다. 중년이 된 지금, 난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만에 하나 한두 해로 끝나지 않고 딸아이의 '열병'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타일러서라도 '정신을 차리도록' 할 심산이었다. 학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백해무익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시쳇말로 '연예인 병'에 걸려 엇나간 아이들을 숱하게 봐온 터다.
사례를 들자면 하루 이틀로는 부족할 것이다. 학교 축제만 봐도 그렇다.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대세가 됐고,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 역시 가수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다. 두 시간 넘는 축제가 오로지 노래와 군무만으로 채워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편견과 자괴감 그리고 원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