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무림 식단달콤한 과일 구성이 많아지면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이현우
나의 버무림 식단은 나날이 발전해왔다. 버무림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금세 배가 고팠다. 포만감이 적었던 탓이다. 냉장고 채소 칸을 둘러보았더니 포만감을 주는 채소들이 보였다. 단호박, 감자, 고구마. 단호박은 쪄서 아몬드와 함께 버무려 수제 단호박 버무림을 만들어 먹었다. 감자는 쪄서 설탕을 찍어 먹었고 고구마는 쪄서 먹거나 프라이팬에 튀겨 설탕을 묻혀 먹었다.
1일 1버무림식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하지 못할 때도 있다. 1일 1버무림식은 지킨다는 개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채식은 수양이 아니다. 내게 버무림 식단은 자연스러운 식사이면서 최선의 식사다.
즐겁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한 끼 식사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죽이지 않고 착취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게 된다. 채식을 하기까지, 이렇게 버무림 식단이 자리를 잡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는 참 소중한 한 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채식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즉 내 머리를 설득하는 일은 쉬웠다. 문제는 내 몸이었다. 몸은 오랜 시간 고기에 적응되어 있었다. 머리는 거부했지만 몸이 고기를 찾았다.
그 몸을 바꾸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번에 채식을 시작하는 건 기적과도 같다. 일련의 과도기가 없는 채식은 고통스럽다. 수양의 과정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실패에 이르는 이들도 많다. 오랜 시간 천천히 고민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채식은 고통도 수양도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도 가끔 '물살이'를 먹는다. 머리로 이미 알고 있다. 물살이도 생명체이며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페스코 채식을 시도했던 초기 과정처럼 몸과 마음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고 믿는다. 분명 언젠가는 지금보다 덜 폭력적인 식탁을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물살이는 물고기의 대체어다.)
간혹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되묻고 싶다. 그대의 식탁은 과연 자유로운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덧붙여, 채식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끔 사람들이 채식을 풀때기로 천대한다. 면전에 대놓고 "풀때기로 배가 차냐? 고기를 먹어야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예의가 없는 것이다. 육식을 하는 사람 면전에 대놓고 사체를 뜯어먹는 야만인이라고 하면 농담이 되겠는가. 버무림은 누군가에게 풀때기로 천대받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한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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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살리는 식사... 하루 한 끼는 버무려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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