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
김영사
지난 4월, 김비 작가는 남편 박조건형 작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기 전까지, 두 달을 살고 올 작정이었다. 이 두 달 살이의 목적은 모호했다. 일거리를 들고 가니 여행이라고 하긴 어려웠고, 완전히 정착하는 것도 아니니 '생활'하러 간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유일하게 정해놓은 계획은 반려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된 김비 작가의 어머니 '복희씨'의 집에 머물며 김 작가는 글을 쓰고, 그의 신랑 박조건형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궤적도, 성격도 다른 세 사람의 '얼렁뚱땅 동거'가 시작됐다. 에세이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는 그 여행 겸 생활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노랫말 같은 혼잣말을 끊임 없이 늘어놓고(복희씨), "대답 같지 않는 대답으로 추임새를 넣"고(김비 작가),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베이스를 까는"(박조건형 작가) 세 사람은 일하다가 함께 밥을 차려 먹고, 마당의 꽃을 구경하고, 섬에 가고, 오름을 오르고, 제주에 수십 년을 살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를 탐방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불협화음 같은데, 크게 모난 데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달 살이'라는 계획은 40여 일로 줄어들지만,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세 사람 사이에 전에 없던 진한 유대감이 피어오르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평생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래서 여행지에 가서도 각기 다른 부분에 눈길을 빼앗기는 이들이 한 달 조금 넘는 동거로 어떻게 끈끈해질 수 있을까.
다만, 이들은 그토록 다른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서서히 익힌다. 함께 하는 동안 때로는 각자가 지닌 아픔을 떠오르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서로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제주도에 머물던 어느 날, 오랜 시간 우울증과 함께 해온 박조건형 작가가 두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훌쩍 사라진다. 밤늦도록 그와 연락이 닿지 않자, 김비 작가와 복희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위치 추적까지 해가며 그를 찾아낸다. 제주를 떠난 그의 발길이 향했던 곳은 양산의 집이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양산에서 신랑을 마주한 김비 작가는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그저 괜찮다고 말한다. 복희씨도 마찬가지. 곧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그를 품어줬을 뿐이다. 누구도 책망의 말을 하거나 홀로 떠난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 이들은 묻지 않는 것으로 안도를, 그리고 환대를 표현했다.
"... 우린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여행은 계속되고 있었을까? 양산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양산으로, 다시 제주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새로움을 꿈꾸어야 하는 삶으로.
복희씨는 별다른 말 없이 처음처럼 신랑을 반갑게 이해해주었다. 신랑도 복희씨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삶이 쓸모 있을까? 이렇게 다시 돌아온 서로에게 잘 왔다, 어서 오라는 환대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도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린 잠이 들었고, 눈을 떴고, 다시 복희씨가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p.172)
제주도에 있는 독특한 '노인 보호구역'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