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5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마지막 일정은 당사 입주 건물 청소노동자들과의 점심식사였다.
노회찬재단
노회찬은 퇴임사에서 힘줘 말한다.
"오늘로서 만 18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무거운 직책을 맡았던 과거로부터 결별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많은 어려운 일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진보신당 전체 당원들의 당에 대한 뜨거운 애정 때문에 한 시도 외로운 적은 없었고 힘들어도 절망한 적은 없었다. 작금의 상황은 사회양극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여러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나 나는 새롭게 출범하는 지도부가 진정으로 진보정당이 정답이고 진보정당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어서 이렇게 말을 맺는다.
"나는 평당원으로 돌아가지만 할 일이 태산 같다. 많은 당원들과 더불어 더 낮은 곳에서 당의 뿌리를 키우는 데 노력할 것으로 나무가 가장 혹독한 시기를 거치며 만든 나이테가 다른 쪽보다 더 단단하듯 진보신당이 경과하는 어려운 시기는 진보신당이 강한 정당으로 거듭나 한국정치를 바꾸고 진보정치의 새 지평을 여는 선구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
2년 뒤인 2012년 10월 21일, 19대 총선(4.11.)에서 재선에 성공한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당대표로 취임하면서 그동안 잊혔던 '6411번 새벽 첫차'를 다시 불러내는 '감동'의 연설을 한다. 선거기획으로는 비록 '실패'였는지 모르겠지만, 노회찬 가슴 깊은 곳에 6411번 버스는 계속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떠난, 그 이후: "노회찬의 약속은 아직 미완성"
2010년 4월 13일 노회찬이 탔던 6411번 새벽첫차는 여전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싣고 새벽길을 달린다. 서울시내만 해도 이런 버스가 한두 대가 아니다.
노회찬이 떠난 뒤 하나의 상징이 된 6411번 버스를 타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자, 정치인들이 꽤 많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새벽 버스 증차된다는데, 언론에 주구장창 나온 우리 노선은 왜 안 바뀌는 건지, 급행 노선이나 제발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박원순 서울시장님이나 문재인 대통령님이 한번 타보면 바로 알 텐데…'라고 입을 모았다."(동아일보, 2019.7.24.)
2019년 서울시는 6월 10일부터 새벽 만원버스를 줄이기 위해 146번, 160번, 240번, 504번 등 4개 노선 첫차 배차를 늘렸다. '6411번 노회찬 버스'는 혼잡한 정류장이 적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노회찬 의원)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언론을) 탔어요. 날마다, 방송국마다. 그런데 하나도 변한 게 없지."
단지 혼잡한 6411번 새벽첫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정치판에... 그런 사람이 또 나올까?' 한참이 지나서야 70대인 윤모씨가 긴 한숨과 함께 노 전 의원에 대한 그리움을 내뱉었다."(동아일보, 2019.7.24.)
노회찬은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다짐했고 그것을 국회 안팎에서 실천했다. 물론 노회찬의 투명인간들이 청소노동자들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 온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들 모두를 뜻하는 것이며, 목소리를 빼앗긴 이 땅의 모든 사회 약자들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것은 노회찬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늘 가슴에 새겨둔 경구인, 신영복 선생의 '함께맞는비'가 말하려는 것과 같았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갖고 있는 많은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 데서 끝나지 말고 동고동락하는 자세로 현장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의원이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노회찬은 '6411번 버스와 투명인간'으로 상징되는,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