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모습.
남소연
"국내 최대의 재벌회장이 대선후보에게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해괴망칙한 판단을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가? 양심이 있는가?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궤변인 유죄판결 판단의 논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회찬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이들 법관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여전히 당시 판결이 타당했다고 말할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 103조 규정에 따른 것으로, 황교안처럼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까?
노회찬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 가능성이 높은 사항인데 왜 서둘러 선고했는지 모르겠다"며 "개정법에 의해 내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을 대법원이 바라지 않는 듯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대법원은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다음날(2월 15일) 논평을 통해 "노 의원이 공개한 것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검찰을 돈으로 관리하려고 모의하는 대화내용이었으며, 그 대화에 거론된 검사들의 명단이었다"며 "공개한 내용에 보호돼야 할 사생활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재벌이 돈으로 검찰을 관리하려는 내용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으로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고자 했던 노 의원의 행위는 모든 국회의원에게 권장돼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권력집단의 손을 들어 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며 규탄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가?" 오랫동안 노회찬이 던진 질문이다.
그렇지 않은 한국의 현실이 역설적으로 증명된 것이 바로 '삼성X파일 사건'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외쳤는데 도둑은 안 잡고 소리친 사람만 소란죄로 체포되는 것"이 바로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2016년 10월 20대 국회 법사위의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회찬은 물었다. 그리고 요청했다.
"대한민국 검찰 앞에 국민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으면 지체없이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다윗과 골리앗"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나 약한 쪽이 훨씬 강한 쪽을 이길 때 사용한다(물론 구약성경의 권위자 조엘 베이든의 <꾸며진 영웅의 실제 생애>처럼 다윗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셀 수 없이 많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노회찬과 삼성 X파일>(이매진, 2012)의 2부(''삼성'이라는 거대 권력과 맞서다 - 삼성 X파일 사건의 진실')에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장이 있다. 삼성X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노회찬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2009년 1월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앞두고 송영길(민주당 최고위원), 이종걸(민주당 국회의원), 권영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심상정(진보신당 대표) 등 여러 사람이 노회찬의 탄원운동 참여 요청에 발벗고 나섰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각계인사 300여 명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 등 문화예술인 200여 명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는 이런 글귀를 담고 있었다.
"불의를 저지른 거대권력은 건재하고 이에 맞선 다윗만 처벌받는 사례가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삼성X파일 사건 관련, 노회찬 변호인단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박갑주 변호사는 그때를 생각하며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정의의 골리앗"이라는, 의도적으로 뒤바꾼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삶이 풍찬노숙이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특히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정치인 노회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중대 사건이었다. … 노회찬은 삼성 엑스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싸움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정의의 골리앗, 정치적 거인이었음을 증명했다." (박갑주, '고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일을 맞아: 권력의 검은 카르텔과 맞서 싸운 그', <오마이뉴스>, 2019. 2.14.).
"언터처블 삼성공화국", 그러나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은 무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