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27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질의하고 있는 모습.
남소연
[지난 기사] "검사들 방앗간 차릴 일 있냐"... 삼성X파일 깐 노회찬의 일갈 에서 이어집니다.
"너무도 강고한 삼성의 힘"... "유일하게 먼저 연락 온 국회의원"
2005년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직전 노회찬은 <프레시안>에 한 편의 글을 기고한다(2005.7.27). 글의 제목은 'X파일의 본질이 도청이라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 악의 커넥션 끊으려면 국조와 특검뿐'.
"안기부 도청테이프 공개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불법로비사건'은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어둠 속의 관련자들이 이제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또 다른 테이프나 녹취록의 공개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으로도 이 사건의 본질과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뒤늦게 나타난 엑스트라의 활극에 눈이 팔려 사건의 본질적인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범죄 수사물이지 첩보 스릴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재벌그룹과 정치권과 언론사와 국가권력기관의 검은 커넥션이다.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공세가 그 주요측면이고 이를 세상에 드러낸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은 부차적인 측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국정원과 검찰이 맡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일이다."
노회찬이 글에서 말한 '악의 커넥션'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1심과 3심 그리고 파기환송심 법정은 골리앗의 손을 높이 치켜들어줬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날, 이상호는 <고발뉴스>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삼성이 금력으로 대선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검찰 간부들을 길들이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천신만고 끝에 입수했습니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저는 이 테이프를 '삼성X파일'이라 명명하고,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습니다.
MBC 사장, 보도국장을 비롯해 보도를 반대하는 수뇌부를 상대로 10개월을 투쟁한 끝에 보도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검찰간부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치권이 모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재벌세력의 금권 쿠데타에 대한 단호한 처벌 의지와 경제민주화 실현 필요성을 피력하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삼성X파일과 뇌물 검사 명단을 넘겼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망설임 없이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검사들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요. 기자질이야 전과가 있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정치인은 달랐습니다.
'의원직 상실'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그의 공판에 증인으로 참여하고 여러 토론회에 나가 목소리를 높였으나, 삼성의 힘은 너무도 강고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서울 서초동 출장소"... 검찰의 "3부류 고객"
삼성장학생. 당연히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삼성X파일 폭로 이후 드러난 '삼성공화국', 아니 '삼성재벌왕국'에서의 삼성장학생은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청와대, 국회, 검찰, 금감원, 재경부, 국세청 등 권력기관과 언론사 등에서 전방위에 걸쳐 오랜 기간 삼성의 불법적인 돈을 받으면서 삼성을 위해 일하는 인사들을 일컫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삼성장학생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데에는 주류 언론사들의 침묵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삼성장학생이란 단어조차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주류 언론 종사자들 역시 삼성장학생이기 때문이다(홍준철 기자, '대해부/삼성장학생 현주소', <뉴스포스트>, 2007.12.4.).
삼성장학생이란 말은 삼성의 권력 장악 시도를 설명하는 명쾌한 말이다. 삼성의 돈으로 키워진 이들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