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6일 오후 경남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자선출을 위한 경남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나란히 앉아서 다른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
권우성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이합집산이 하도 심한 탓에 우리나라 정당들의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 100년 정당이 있는 나라들이 진짜 정치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면 100년 정당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소속 정당을 탁월하게 이끈 역사적 지도자(historic leader)들의 계보다. 유명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콘크리트 지지'라는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는 대통령 개인을 향해 출범 이후 3년 만에 굳어진 최근의 정치 현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유산과 자산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라는 인적자원을 승계하고 있는 정치적인 공공재다. 민주당의 당원이나 지지자들 가운데 세 지도자에 대한 선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친이-친박과 같은 화해하기 어려운 적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100년 정당을 향한 항해를 이제 시작할 수 있는 나침반과 지도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보수의 역사적 리더십은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을 관통한 총알 몇 발로 궁정동에서 멈췄다. 역사적(광주항쟁의 유혈 진압)으로나 법적(내란죄)으로 처단된 전두환과 노태우를 옹립할 수 없었던 보수의 역사관은 '국부 이승만'과 '산업화를 이끈 구국의 지도자 박정희'에게 기대는 전략으로 귀결됐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났던 콘크리트 지지 역시 지역주의와 더불어 이러한 역사적 계보가 대중적으로 먹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은 일순 모든 것을 붕괴시켰다. 보수는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만 없는 게 아니다. 민주화 이후 보수의 역사를 쓰는 데 게을렀다. 특히 지역주의의 유혹에 갇혀 타지에서 참신한 인물을 발굴·육성하는 데 인색했다. 최근 몇 차례의 대선만 보면, 민주당의 후보와 지지자의 강력한 기반이 부산·경남이라는 사실에서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다시 말해, 보수의 위기는 깜짝 놀랄만한 후보가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구조적인 차원에서 보수주의와 정당을 쇄신할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보수 3대 허약증 ②] 기초체력 허약증
정치에도 몇 가지 선행지표가 있다. 가령, 다음 총선(22대)에서 어느 정당의 여성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당선할 가능성이 클까? 아주 단순하게 과거의 패턴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민주당과 정의당이다. 왜냐하면, 최근 여성 지역구 당선자들은 수도권에서 그리고 초선보다는 재선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이현출, 2020.7., "21대 총선과 여성", <젠더리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민주당 지역구 여성의원 20명 중 19명은 수도권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역구 여성의원 8명 중 2명은 강남, 1명은 경기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남권이다. 또한, 전체 57명의 여성 의원 중 거대 양당의 비율은 각각 49%, 31% 정도다.
또 다른 선행지표는 자치단체장의 정당별 분포에 있다. 최근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정치인의 충원 채널로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제, 선거 직전 전대협의장을 영입하거나 유명 연예인을 공천하는 이벤트 정치 시대는 지났다.
세 차례(2010, 2014, 2018)의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지방자치의 생태계 안에서는 성장 및 토건 행정에서 고용 및 복지 행정으로의 구조적 전환이 발생 중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소통을 내세운 걸출한 지방정치인들이 배출됐다.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은 민주당 당적의 고 박원순 시장이나 이재명 도지사뿐 아니라 특히 서울시 산하 구청장들의 혁신 경연장이었다.
정당의 경쟁력은 대선후보의 지지율에 있지 않다. 그것은 똑똑하고 당찬 지방의원들과 구청장, 군수와 시장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특히 정치인과 당원 그리고 지지자 중 여성의 비율은 정당의 건강함과 잠재력의 확실한 척도다. 그런 점에서 한국 보수의 약점은 여의도 국회가 아니라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의 허약한 풀뿌리 역량에 있다.
[보수 3대 허약증 ③] 정책의 발육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