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그가 편도 티켓만 끊은 이유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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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5일, 한 일본인 여성이 두 명의 언니와 함께 니가타 공항에서 국제선 탑승 수속을 밟다가 공항 직원에게 저지당한다. 스위스에 가기 위해 190만 엔(한화 약 2000만 원)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 퍼스트클래스 비행기 표까지 끊은 그가, 언니들과 달리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비행편을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항 직원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임의로 일본행 항공편을 예약해 탑승 게이트를 통과한다. 애초 그가 편도 티켓만 끊은 이유는 분명했다. 돌아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돌아올 수 없었다. 3일 뒤, 그에겐 죽음이 예정돼 있었다.
2018년 11월 28일, 다계통 위축증(MSA)을 앓던 50대 일본 여성 고지마 미나가 스위스 바젤에 있는 '라이프서클'에서 숨을 거뒀다. 라이프서클은 스위스 의사 에리카 프레지크가 만든 단체로, 지난 2011년 설립된 이래 매년 약 80건의 안락사(조력자살)을 진행해왔다.
라이프서클은 안락사 중에서도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아니라, 환자가 의사에게 제공받은 약물을 스스로 투여하는 '조력자살' 방식을 시행한다. 고지마 미나의 죽음은 일본인 최초의 조력자살 사례였다.
그가 죽음을 택하던 현장엔 라이프서클 관계자뿐만 아니라 그의 언니, 그리고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이 있었다. 미야시타 요이치도 그 중 하나였다. 고지마의 마지막 순간을 직접 목격한 미야시타 요이치는 이후 책 <11월 28일, 조력자살>에 그 모든 과정을 남겼다.
어느날 도착한, '죽고 싶다'는 메일
2018년 8월 17일 미야시타 요이치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고지마가 미야시타 요이치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일이었다. 제목은 이랬다.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할 생각입니다'. 고지마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기자에게 대뜸 죽음을 주제로 운을 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는 2015년부터 안락사가 인정되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의 나라를 방문해 안락사 문제를 취재해왔다. 그 기록을 정리한 르포르타주가 바로 전작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였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인 일본에서 이미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는 서구 사회의 모습을 취재한 그의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논쟁도 컸지만, 관심도 뜨거웠다. 실제 안락사를 원하는 일본인들이 미야시타에게 조언과 도움을 구하려 연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미야시타에게 고지마는 '놀랄 것 없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미야시타에게 메일을 보냈을 당시, 고지마는 난치병인 '다계통 위축증'(MSA)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었다. 그는 소뇌가 위축돼 전신의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온종일 누워 지내야 했고, 식사는 물론 배변 활동마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결국 고향에 있는 큰언니 집에 머물며 간병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자살 시도를 거듭하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이었다.
미야시타를 향한 고지마의 의사는 분명했다. "안락사를 준비하는 작업과 스위스에 가는 것 자체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꼼짝없이 누워 천장만 보는 신세가 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것, 그러니 라이프서클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거였다.
메일 내용은 절박했지만, 미야시타는 '누군가의 죽음에 개입할 순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가 오랫동안 안락사를 취재해왔다고 하더라도, 이를 권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안락사를 부정하지 않을 뿐이었다. 또 '신념' 문제를 떠나 고지마의 바람을 실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라이프서클에 가입한다고 해서 바로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프서클에서 안락사를 시행하려면 네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다, 회복의 전망이 없다, 환자가 바라는 치료 수단이 없다, 명확한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가 그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류 심사와 두 번의 면접을 진행한 후 결격 사유가 없을 때만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라이프서클 가입 이후 이 절차를 기다리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언어 장벽과 안락사에 들어갈 비용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그때까지 자신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고지마의 메일을 읽은 미야시타가 '안락사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덴 이런 배경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상황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저 고지마가 어떤 이유에서 안락사를 원하게 됐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취재는, 약 세 달 뒤 고지마의 안락사 현장 동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예상 외로 라이프서클의 일처리가 빨랐고, 이미 안락사 일정이 잡혀 있던 다른 환자가 사망하는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안락사 일정이 확정됐다고 알리는 라이프서클 프레지크의 메일에, 고지마는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그러면 28일에 저는 죽을 수 있는 거네요. 고맙습니다."
"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