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한 가운데 지난 1월 28일 중국 수도 베이징 왕징 한인촌 식당에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단지(거주지를 일종의 '블록'으로 나눠 관리하는 단위)의 이동 제한이 걸리기 전까지는 직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그의 시선은 재난 속에서 더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들에게 향한다.
배달원, 환경미화원, 편의점 점원,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병원을 짓는 데 참여했던 건설 노동자들까지. 때론 '수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질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내려간다.
흔히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 재난을 견뎌낼 수 있는 자원과 힘엔 분명 차이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의 일상은 더 빠르게 무너진다. 궈징은 그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명하게 기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좌절감에 잠식되진 않는다.
... 한 행인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에게 죽는 게 두렵지도 않느냐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하는 말씀이, 죽는 게 두려워도 방법이 없다고, 더럽고 치사하면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p.85
궈징에겐 듣고 쓰는 것이 곧 "무력감과 공존하는 방법"이었다.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를 마주하고 자신의 미약함과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지만,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는 이 "일종의 소소한 반항"을 통해 "정보가 봉쇄된 상황에서 진짜 정보를 찾고, 격리된 와중에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확실성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살뜰하게 가꿔나간다. 그가 수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매일 밤 놓치지 않았던 건 친구들과의 영상 채팅이었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는 매일 일기를 쓰는 동시에 밤마다 수다를 떨었다. 이른바 '밤의 채팅'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중없었다. 누군가는 캐러멜 밀크티를 만들거나 엄마와 춤을 춘 경험을 나누고, 한동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느 날엔 가정폭력의 양상과 비가시화되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우리를 기어코 살게 하는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생존'이 아닌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것이다.
화면 속의 친구는 내 눈치는 아랑곳 않고 꼬치구이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친구들이 날 개의치 않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이지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각자 자기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게 정말 중요하니까. p.42
나로서는 일관된 마음으로 일기 전체를 써 내려갈 방법이 없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터무니없음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는 것뿐이다. p.64
궈징은 반복해서 말한다. 무력해도 움직여야 한다고, 행동만이 희망을 만든다고,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연결이 주는 뜨거운 감각을 함께 느끼자고.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에 실린 일기는 3월 1일부로 끝난다. 아직 우한 봉쇄 상황이 풀리기 이전이다. 책엔 미처 다 실리지 못했지만, 실제 궈징은 우한의 봉쇄가 해제되던 4월 8일까지 계속 일기 쓰기를 이어간다.
약 한 달간의 기록이 텅 비어있지만, 궈징은 아마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그 일기에서도 코로나19가 불러온 불평등한 죽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무력감과 좌절감에 휩싸이지 않고 움직인 기록 또한 남겼을 것이다. 동시에, 그날의 식사 메뉴를 꼬박꼬박 적고 시시껄렁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들이 오간 '밤의 채팅'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이 일관되지 않은 기록은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상과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우리에게, 미약하지만 분명 저 멀리 빛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시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을 이 시기에 만난 사람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사스를, 원촨 지진을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이 시기의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갈 것이다. p.140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궈징 (지은이), 우디 (옮긴이), 정희진 (해제),
원더박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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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 여성이 벌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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